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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서 버티며 “살려주세요”… “팔십 평생 이런 난리는 처음”

지붕서 버티며 “살려주세요”… “팔십 평생 이런 난리는 처음”

최종필 기자
최종필 기자
입력 2020-08-09 17:24
업데이트 2020-08-09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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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마가 할퀸 구례 오일장 피해현장 르포
보트 지나갈 때마다 곳곳서 구조요청 외쳐
“대피중 둥둥 떠다니는 유실물에 다치기도”
“32년만에 화개장터 잠겨… 댐관리 못한 탓”

쑥대밭 돼버린 구례오일장
쑥대밭 돼버린 구례오일장 9일 오전 전남 구례군 구례읍에서 수해를 당한 오일장 상인이 물에 빠진 마늘을 정리하고 있다. 남부 지역에 지난 7일부터 이틀간 400㎜ 넘는 폭우가 쏟아지면서 섬진강 물이 넘쳐 구례군 등의 저지대가 침수됐다.
구례 연합뉴스
“내 평생 이런 난리는 처음이야. 시장과 모든 상점이 진흙탕으로 변했어.”

9일 오전 10시 가장 피해가 컸던 전남 구례군 오일장엔 수마가 휩쓸고 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1㎞ 남짓의 시장통에는 냉장고와 소파, 선풍기 등 가전제품을 비롯한 수백여개의 물건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부인, 자녀 등과 생활용품 매장을 청소하고 있던 이모씨는 “2층 옥상 위 지붕을 타고 올라가 보트를 타고 간신히 빠져나왔다”며 “둥둥 떠다니는 가전제품 등에 몸을 다친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백화자(76)씨도 “보트가 지나갈 때면 숙박업소나 상가 건물 위층에서 ‘살려 주세요’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며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무서워서 다리가 후들거린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구례여중 체육관 임시 대피소에서 이틀째 생활하고 있는 여도영(84)씨는 “지대가 낮기도 했지만, 일평생 이런 난리는 처음”이라며 “섬진강댐과 주암댐 등 동시에 2개 댐이 수문을 열면서 피해가 커졌다”고 말했다.

물이 빠지면서 오일장 상인들은 이날 오전 자신의 가게를 찾았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전날 사시천 제방이 무너져 오일장 인근의 주유소와 숙박시설의 기름도 유출됐다. 진흙탕이 된 상점에서는 기름 냄새와 악취까지 진동했다. 손모(54)씨는 “수돗물이 끊겨 침수된 지하의 물을 퍼서 가재도구와 상품을 씻었지만 도저히 쓸 수 없다”면서 “제대로 쓸 만한 물건이 하나도 없다”며 하늘만 쳐다봤다.

피해가 심했던 화개장터로 가는 15㎞ 도로 곳곳에는 각종 수초와 커다란 나뭇가지 등이 뒤엉켜 있어 전날의 상황을 설명하는 듯했다. 지난 8일 하루 동안 420㎜의 물폭탄이 쏟아져 32년 만에 침수됐던 경남 하동군 화개면 화개장터는 이날 오전 물이 다 빠졌다. 화개장터 입구에서 식육식당을 하는 김민수(56)씨는 “이쪽 부근은 황토 뻘물인데 갑자기 섬진강댐을 방류하니까 물이 역류하면서 도로를 넘어 시장 쪽으로 들어왔다”며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댐 관리를 잘못한 게 이번 수해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호남 화합의 상징을 나타내듯 하동군 직원과 의경, 인근 마을 주민 등 수백명이 복구 작업을 도왔지만 쑥대밭으로 변한 화개장터를 청소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하동군의 한 관계자는 “포클레인 등 장비를 동원해 최대한 복구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도로·가옥 등 침수·유실된 시설물이 많다”면서 “정부의 인력과 장비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구례·하동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2020-08-1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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