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미도 등대지기 이동호씨 “이젠 선진한국 비추어라”

팔미도 등대지기 이동호씨 “이젠 선진한국 비추어라”

입력 2010-01-01 00:00
업데이트 2010-01-01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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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 마지막 날이 속절없이 어둠에 휩싸이더니 이윽고 경인년 새해의 모습으로 예쁘게 화장을 한다. 인천시 옹진군의 작은 섬 팔미도. 홀로 외로이 자리잡은 등대에서 한줄기의 광채가 바다로 쭉 뻗어나갔다. 먼 바닷길을 다녀오느라 지친 많은 배들이 그 빛줄기에 희망을 의지하고 항로조정을 하느라 분주히 움직인다.

새로운 10년이 시작되던 날 새벽, 등대 불을 밝히는 등대원 이동호(34)씨는 여느 때와는 달리 가슴이 마구 뛴다. 이씨와 동고동락을 하는 팔미도 등대는 더욱 감회롭게 다가왔을 터. 팔미도 등대는 우리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한줄기의 빛으로 나라를 구한 역사적 주인공이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던 아군함정들은, 우리의 켈로부대(대북첩보부대) 대원들이 적의 수중에 있던 팔미도 등대를 탈환해 밝힌 불을 길잡이 삼아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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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등대인 팔미도 등대 앞에서 이동호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인천해양항만청 제공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인 팔미도 등대 앞에서 이동호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인천해양항만청 제공
●1903년 불밝힌 근대식 등대 1호

이씨는 “인천상륙작전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던 나라를 구했듯이 경인년 새해 아침에 밝힌 불이 경제위기 등 각종 난제를 풀고 당당한 선진국 대열에 오르는 새로운 시작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바다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것은 등대원의 숙명이요, 외로운 직업이지만 올해는 다른 해보다 더욱 기대에 차 있다. 그동안 사람들의 발길을 불허한 채 영원히 등대만이 존재할 것 같았던 이곳에 사람들의 발길이 최근들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팔미도는 1903년 최초로 불을 밝힌 우리나라 근대식 등대 1호로 격동의 한반도 역사와 함께 해왔지만 민간인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다가 2009년 1월 106년만에 개방됐다. 벌써 17만여명이 등대를 보려고 조그만 팔미도 섬(0.076㎢)을 다녀갔다. 이씨는 팔미도의 주인처럼 뿌듯하기만 하다. 그래서 이씨는 “올해에는 팔미도를 찾은 이들을 위한 기본적인 편의시설을 갖췄으면 좋겠다.”고 작은 바람을 전한다.

●“서해 남북충돌 더이상 없었으면”

이씨는 그저 바다가 좋아 등대원을 택했다. 동의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페인트 제조회사 연구원으로 근무했지만 바다와 연관된 일을 하고 싶어 4년 전 항만청 구직사이트를 두드렸다. 바닷가인 부산에서 자란 사나이의 운명처럼 그는 등대원이 됐다.

이씨가 불을 밝히는 위치는 하늘로 표효하는 호랑이의 모습에 비유할 때 호랑이의 앞가슴을 떠올리게 하는 곳으로 한반도의 가장 중심이자 복잡한 서해상을 밝히고 있어 서해상에서 자주 빚어지는 남북간의 충돌에 대해서도 남다른 소회가 있다.

“지난해 11월 남북 해군간에 교전이 벌어진 대청도 해상은 팔미도와 멀리 떨어져 있어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서해상에서 자꾸 충돌이 빚어지는 것은 좋지 않으며 새해에는 더 이상 남북 군인들이 바다에서 피를 흘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2010-01-01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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