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 없어 혼란만 가중” VS “진짜 인재 가릴 수 있다”
학벌도 나이도, 학점이나 영어성적도 따지지 않는 입사 시험이 있다.한국남동발전과 중소기업진흥공단은 올해 신입사원 채용에서 서류전형을 없앤 ‘스펙초월 소셜 리크루팅’ 방식을 도입해 눈길을 끌었다.
이르면 내년 상반기부터 295개 공공기관에서 서류전형 대신 지원자의 업무 능력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채용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들 기관의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인재를 가릴 수 있다는 긍정론과 명확한 기준이 사라지면 혼란만 가중된다는 부정론이 교차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 이름 석자만 걸고 ‘비전과 능력’ 보여줘야
”차세대 발전기계분야의 기술명장을 꿈꾸는 XXX입니다.”
마이스터고 졸업을 앞둔 A(18)군은 지난 15일 한국남동발전 발전기계직 신입 인턴사원으로 채용됐다.
A군은 학력, 영어성적 등을 제출해야 하는 서류전형 대신 ‘스펙초월 소셜 리크루팅’을 거쳐 합격했다.
이름 석자와 연락처 정도만 공개한 A군은 온라인으로 주어진 미션을 4주간 수행했다. ‘나의 비전’ 등 주어진 주제를 UCC(사용자제작콘텐츠)나 그래픽으로 표현하는 등 색다른 과제들이었다.
A군이 제출한 과제는 남동발전 각 분야별 선배 사원 50명으로 구성된 내부 평가위원과 20명의 외부 평가위원 등 평가단의 평가를 받았다.
이 단계를 통과한 A군은 인·적성 검사와 면접을 거쳐 최종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A군의 정규직 전환 여부는 앞으로 5개월간 인턴기간을 보내고서 오는 12월에 결정된다. 남동발전의 정규직 전환률은 90% 이상이다.
A군은 “기본 스펙이 되지 않으면 면접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서류전형보다 훨씬 공평한 채용 방식인 것 같다. 열정과 도전정신, 능력만 있으면 누구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동발전은 올해 고졸 채용인원 57명 중 60%가량인 35명을 A군처럼 ‘스펙초월 소셜 리크루팅’으로 뽑았다. 지원자가 1천명 가까이 몰려 경쟁률은 30대 1을 기록했다.
중소기업진흥공단도 ‘스펙초월 소셜 리크루팅’ 방식을 이용한 채용을 진행 중이다. 채용 인원 30명 중 15∼20%는 이 전형으로, 나머지는 기존 일반 전형으로 뽑을 계획이다.
공단은 고졸, 대졸 등 학력제한도 두지 않았다. 인·적성 검사 등도 생략해 스펙초월 전형을 거쳐 바로 최종면접을 보도록 했다.
◇ “기준 없어 혼란만 가중” VS “진짜 인재 가릴 수 있다”
남동발전과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시도는 획일화된 점수와 스펙을 넘어서 ‘진짜 인재’를 가리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선 이런 채용방식이 정확한 기준이 없어 오히려 불공정해지거나 혼란만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객관적인 기준을 세우기 어려운 평가 방식이다보니 예전처럼 ‘열심히 공부하면 붙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 지원자들이 더 큰 부담을 지게 된다는 것이다.
한 공기업 준비 관련 인터넷 카페에는 이 전형을 두고 “대체 무슨 기준으로 사람을 뽑겠다는 것이냐. 이래도 저래도 불리한 느낌이다”, “공정하다고 하면서 사실상 또다른 내부 기준을 세우는 것 같다” 등 볼멘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업무 관련 전공지식이나 직무능력 등 전문성은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끼’만 보고 뽑게 되는 부작용이 생길 것라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채용 담당자들은 기업의 인재상을 바탕으로 전문성과 문제해결능력, 논리력 등을 평가할 수 있도록 전형을 설계했다고 설명한다.
이를테면 ‘700명이 탄 배에 사고가 생겨 승객을 구조해야 하는데 구명보트는 200명분 밖에 없다면 어떤 기준으로 순서를 정해 사람을 구할 것인가’, ‘정년 연장에 따른 청년 실업 증가 문제의 해결 방안은 무엇인가’ 등 지원자의 논리와 창의성을 다면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미션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남동발전 인력개발팀 김홍민 차장은 “소위 ‘스펙’은 점수화·획일화 돼 있는 경우가 많아 스펙 좋은 사람이 반드시 일을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 우리가 주는 미션은 열정과 끈기, 재능이 있는 지원자에게 유리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진흥공단 박은숙 인사팀장은 “이 전형은 열정과 전문성, 인성을 위주로 평가한다. 앞으로 스펙을 위주로 하는 서류전형 형태는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본다”며 “아직 채용 성과는 알 수 없어 앞으로 일반전형 합격자와 스펙초월 전형 합격자의 업무 성과를 쭉 비교해보고, 결과를 통해 전형을 보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서류 스펙 이외의 다른 면도 볼 수 있는 채용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맞다”며 “그러나 영어 성적이 좋다고 업무 적응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듯이 UCC를 잘 만든다고 해서 좋은 인재인 것도 아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 잠재력과 전문성을 모두 평가할 수 있는 채용 방식을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