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읽기 시간 이세돌보다 더 많이 걸려
인공지능의 힘은 상상을 뛰어넘었다.9일 세계 바둑 챔피언 이세돌 9단에 압승을 거둔 인공지능(AI) 알파고는 작년 10월 판후이 2단을 5대0으로 꺾을 때보다 판세를 읽고 수를 정하는 실력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그동안 많은 업그레이드를 했다며 승리에 자신감을 보인 구글 측의 장담이 현실이 됐다.
대국에서도 처음부터 이세돌 9단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현역 바둑 최고수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후반부 알파고가 갑자기 이세돌 9단의 우측 허점을 파고들 때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라는 감탄이 쏟아졌다. 예측불허의 과감함이라는 인간의 강점을 인공지능이 따라한 것이다.
알파고의 이번 승리는 AI의 학습력이 사람을 능가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이세돌 9단은 알파고의 실력이 작년 10월 판후이전 때보다 향상됐을 것으로 추측했지만 어느정도인지는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5개월 사이 변화는 놀라웠다. 알파고는 쉴새 없는 자기학습을 통해 스스로를 더 강하게 단련했다. 이런 짧은 기간의 ‘강화학습’은 사람이 상상도 못 할 압축 성장이다. AI의 이런 강점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 이세돌 9단은 정확한 계산에 의한 한수한수들에 허를 찔리며 무너지고 말았다.
소프트웨어 정책 연구원의 추형석 선임연구원은 “구글이 작년 10월 이후 좋은 기보를 더 많이 입력하진 않은 것 같고 강화학습에서 판세가 결정된 것 같다. 알파고가 모의전을 계속하면서 자기 단점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많이 한 것 같다”고 추정했다. 사람처럼 학습을 통해 자기발전을 이룬 것이다.
수읽기에는 기계인 알파고가 이세돌 9단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사용했다. 경기 종료 당시 이세돌 9단은 제한시간 2시간 중 약 28분이 남았지만, 알파고는 2시간 중 5분 남짓만 남겨둔 상태였다. 바둑 최고수와 대결하면서 프로그램에 입력된 최상의 수를 찾느라 시간이 많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세돌 9단도 경기 내내 굳은 표정으로 고민을 거듭했지만, 알파고는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수를 검토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알파고는 첫수부터 사람처럼 1분 30초 가량 뜸을 들였다.
구글의 최고 기술력이 집대성된 알파고가 장고를 거듭한 것은 바둑의 극단적 복잡성 때문이다. 바둑은 가능한 경우의 수가 우주 전체의 원자 수보다 많다. 알파고가 바둑의 수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효율을 아무리 비약적으로 개선해도 매번 망설임 없이 바로 돌을 놓는 경지까지는 가진 못한 것이다.
그러나 알파고는 처음 예상보다 착점 과정이 매끄러웠다고 바둑 전문가들은 전했다. 장시간 판단이 지체되는 불상사는 없었다는 얘기다. 오히려 정상급 대회에 출전한 프로 기사들과 비교해도 순조롭게 착점(돌을 놓는 것)을 이어갔다는 평이다. 즉 우리가 흔히 기계에 기대하는 신속함에는 못 미쳤지만, 실제 사람과 비교하자면 양호한 속도를 보인 것이다.
영미권 유튜브 중계에서 해설을 맡은 마이클 레드먼드 9단(미국)은 “판후이전 때 알파고는 방어적으로 바둑을 뒀고 판후이가 이해 못 할 악수를 둔 게 승부에 영향을 크게 미쳤다. 이번 경기에선 거꾸로 알파고와 이세돌 모두 공격적 바둑으로 접전을 펼쳐 흥미로웠다”고 평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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