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한글날 ‘부활’/박정현 논설위원

[씨줄날줄] 한글날 ‘부활’/박정현 논설위원

입력 2012-11-09 00:00
업데이트 2012-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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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우리 민족의 영욕과 궤를 같이한다. 민족이 질곡에 처했을 때 한글은 무시당했고 천대받았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했지만 그것은 완전한 글이 아닌 반글, 속된 글자라는 뜻의 언문으로 불렸다. 중국과의 사대관계에서 벗어나고 나서야 비로소 부녀자와 어린아이를 위한 글이라는 굴레를 벗을 수 있었다. 지금처럼 한글이라는 온전한 이름을 얻게 된 것은 1913년 주시경 선생에 의해서다. 하지만 일제하 한글은 명맥만 유지할 뿐, 학교에서 주로 사용된 문자는 한자와 일본의 문자인 가나(?名)였다.

광복을 맞고 나서 1945년 10월 9일이 한글날로 지정됐고 이듬해 훈민정음 반포 500주년을 맞아 한글날은 공휴일로 정해졌다. 한글과 한글날이 명실상부하게 우리 글로 제자리를 찾은 셈이다. 그러나 1991년부터 한글날은 국군의 날과 함께 사뭇 황당한 이유로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이완된 사회분위기를 바로잡고, 10월에 집중된 연휴를 줄임으로써 수출 부진 등 업계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타개한다는 게 당시 정부의 설명이다. ‘공휴일 한글날’이 사회분위기를 흐리고 수출 입국에 차질을 준다는 어설픈 개발경제·성장제일주의 시대의 명분에 밀린 것이다.

한글이 어떤 문자인가. 566년 전 창제된 한글의 우수성은 디지털 시대에 최고의 알파벳으로 해외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낼 때 한글로 5초면 작성하는 문장이 한자나 가나로는 35초나 걸린다. 광속의 시대에 비교할 수 없는 경쟁력을 갖춘 문자가 바로 한글이다. 영국의 다큐멘터리 작가 존 맨은 그의 책 ‘알파 베타’에서 “한글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되면서 한글의 위상은 격하됐다. 한글날이 내년부터 다시 공휴일로 지정된다고 하니 만시지탄이다. 2005년 기념일에서 국경일로 바뀐 한글날이 공휴일로 지정되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노는 날 하나 더 는 것으로 가볍게 봐 넘길 일이 아니다. 공휴일 지정의 사회적 편익이 5조원에 육박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경제적 효과를 높이는 한글 국경일로 만들어야 한다. 한글은 한류(韓流)의 꽃이다.

삼성 사장단이 최근 ‘21세기와 훈민정음’이라는 특강을 들었다고 한다. 훈민정음에 담긴 혁신·위민의 정신을 배우자는 뜻에서 였을 것이다. 대선의 계절,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세종대왕의 정치’가 그립다. 한글의 가치는 우리가 지킬 때 더욱 빛을 발한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2012-11-0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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