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호 새벽을 열며] 태산의 옥황상제와 풍진세상

[최동호 새벽을 열며] 태산의 옥황상제와 풍진세상

입력 2013-06-20 00:00
업데이트 2013-06-20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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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호 고려대 명예교수·시인
최동호 고려대 명예교수·시인
세상이 답답하다. 쉽게 풀리는 일은 거의 없고 일마다 첩첩산중이다. 경제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다 앞길이 난망하다. 남북문제만 하더라도 잘 풀릴 것 같더니 다시 자물쇠가 잠겨 있다. 지난 5월 하순 중국 산둥성 태산에 올랐다. 공자의 고향 곡부에 들렀다가 태산을 오르기로 했다. 오전에는 비가 조금 내리고 하늘은 음울했다. 운무가 휘도는 하늘 거리를 걸어 정상으로 향했다. 대개 6000계단을 올라야 한다는 말이 있었지만 수많은 사람의 발걸음이 한 곳을 향해 있었다. 청제궁(靑帝宮) 문을 넘어서니 태산의 진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과연 태산의 정상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중국 진시황을 필두로 역대의 황제들이 봉선 의식을 했다는 현장에 서게 된 것이다. 우선 한 무제가 세웠다는 무자비가 눈에 들어왔다. 대략 2m 높이의 무자비는 천하를 평정하고 태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여 한 글자도 새기지 않았다는 무언의 전언이 수천의 글자보다 더 많은 의미를 느끼게 했다. 한 무제는 다섯 번이나 태산에 올라 제사를 지냈고, 청나라 건륭제 또한 열 번이나 태산에 올랐다고 한다. 모두 자신의 공적을 하늘에 고했다고 했으나 아마도 자신의 공적을 헤아려 보고 잘못을 돌아보면서 백성에게 하늘의 명을 받아 자신이 천하를 다스리고 있음을 알리는 정치적인 의미가 들어 있었을 것이다.

왜 이렇게 황제들이 태산에 올라 하늘에 제를 지내려고 했을까. 태산은 도교의 중심이며 민간 신앙의 정점에 자리 잡고 있는 상징적인 오악지존의 산이라고 한다. 수많은 중국인이 지금도 태산에 오르는 것은 소망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일 것이다. 태산의 정점에는 중심에 옥황상제를 모시는 옥황정이 있고 좌우에 이를 보좌하는 전각이 있었는데 동쪽은 관일정, 서쪽은 망하정이라 한다. 동쪽은 일출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고 서쪽은 황하를 바라볼 수 있다고 하니 이 같은 명당이 더 있을 수 있겠는가. 옥황정 앞마당에는 태산극정(泰山極頂)이라는 표지석 중심으로 동심건(同心鍵)이라는 열쇠가 석책에 무수히 쌓여 있었다. 이 열쇠는 언제 어디서나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갖는다는 약속을 의미한다고 한다. 어떻든 태산의 중심에 옥황상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의 이야기나 교과서에 수록된 시조에서 익숙하게 들어온 태산의 정점에 옥황상제가 있다는 것은 동양인 상상력의 중심에 민간 신앙의 최고 신격으로 그가 존재한다는 것이었고 하나의 충격이었다. 역대 중국의 황제들이 봉선 의식을 행한 것도 바로 민중의 마음속에 있는 하늘의 신에게 제사를 드린 것일 터이다. 동악 태산 옥황정의 기둥에 새겨진 편액의 글씨가 건륭제의 필체임을 확인했을 때 건륭제의 소망 또한 얼마나 간절한 것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공자 또한 태산에 올라 ‘등태산이소천하’(登泰山而小天下)란 말을 남겼다고 맹자가 전하는 글귀를 새긴 바위가 있었다.

태산을 등정하고 돌아 내려 오는 길에 산하를 굽어보니 천하의 절경이란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오전에 비가 내린 탓인지 하늘은 맑고 가끔 일어나는 운무가 선선한 바람을 몰아와 더욱 풍치를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이 절경이 절경뿐이겠는가. 한국에 돌아와 보니 지금의 답답한 국내외 정세를 풀기 위해 다시 한 번 태산에 올라 그 답답함을 옥황상제나 하늘의 신에게 고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마침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으로 방문한다고 한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물론 하늘의 신에게라도 새로운 대화의 문을 열어달라고 기원해 볼 필요가 있다. 국제 정세는 숨 가쁘게 돌아가는데 남북의 문은 굳게 닫혀 있으니 진퇴양난의 길에 가로막혀 일찍 다가온 여름이 더욱 답답하다. 동북아의 질서 개편이 시동되어 새 역사의 시대가 한층 임박한 상황에서 ‘태산이 높다 하되 못 오를 리 없다’는 옛 시조를 다시 한 번 읊조리며 풍진 세상의 여름을 맞는다.

2013-06-2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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