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저출생 대책, 재원 방안 없는 空約
저출생 예산 미래 위한 인적 투자에 해당
부가세율 인상·부채 비율 증가 감수해야
또다시 ‘정치의 계절’이다. 정치인들은 공약을 통해 표심을 구한다. 하지만 요즘 공약엔 눈길이 잘 가지 않는다. 586세대를 청산해도, 검찰 독재를 분쇄해도 우리의 팍팍한 일상이 뭐가 바뀐단 말인가. 내수가 살아날 리도, 물가가 잠잠해질 리도,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저성장이 개선될 리도 만무해서다.더 실망스러운 건 소멸 사회로 접어든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여야는 최근 저출생 대책을 일제히 내놨다. 국민의힘은 △아빠 휴가 유급 의무화 △초중고교생 연간 100만원 바우처 지급 등을, 민주당은 △임대주택 제공 △최대 1억원 지급 등이 뼈대다. 각각 매년 10조원, 28조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재원 마련 대책은 빠졌다. 국민의힘은 고용보험기금 등을 활용한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추계치조차 없다.
지갑을 헐지 않고 돈을 쓰겠다는 건 좋게 말해야 ‘봉이 김선달’ 식이다. 물론 저출생 문제는 돈으로만 해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보육 친화적 환경 조성과 입시 및 노동시장 개편, 균형발전 등 저출생 해결을 위한 과제들은 모두 재정이 투입되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격언은 저출생 문제와 관련해서도 정확히 들어맞는다.
저출생 예산은 허공에 날려 버리는 돈이 아니다. 생산은 토지와 노동, 자본 등 3요소에 의해 이뤄지는 만큼 노동 투입을 위한 일종의 투자다. 통계청장을 지낸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장이 “과거 기업들의 물적 투자에 세액공제를 시작했을 때도 ‘왜 세금을 깎아 주냐’는 비판이 있었지만 지금은 당연히 받아들여진다. 저출생 문제도 인적 투자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우리가 필요한 저출생 예산은 얼마 정도일까. 2022년 기준 한국의 가족 지원 예산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65%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29%에 비해 0.6% 포인트 이상 낮다. 프랑스(3.34%) 등은 3%대다. 아동수당 등 ‘현금 지급’ 기준으로는 GDP 대비 0.32%다. OECD 평균(1.12%)의 3분의1에도 못 미친다. 저출생에 성공적으로 대처하려면 연간 GDP 대비 1~2%, 약 20조~40조원의 추가 예산 투입이 필요하다. 2024년 연구개발(R&D) 예산(26조 5000억원) 전체를 쏟아부어도 모자란다. 예산 한두 푼 아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결국 세제와 나라 곳간 건드는 걸 빼놓고는 답이 없다. 법인세나 소득세 인상은 거의 불가능하다. 남은 재원이 하나 있긴 하다. 부가가치세다. 우리나라의 부가세율은 10%로 17% 정도인 OECD 평균보다 크게 낮다. 과거 막대한 통일비용의 재원으로 주목받은 까닭이다. 지난해 73조 8000억원이 걷혔다는 점을 감안하면 3% 세율 인상으로 20조원이 넘는 돈줄이 생긴다.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과세의 원칙에도 부합한다. 1990년까지 시행됐던 방위세 등의 새로운 세목을 신설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건전한 재정건전성은 미래세대를 위한 저축에 해당한다. 하지만 저출생 예산은 바로 미래세대를 위한 투자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이 과거 SNS에 밝힌 것처럼 저출생 극복을 위해서는 현재 50% 수준인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70%, 80%까지 올라가는 걸 감수해야 한다. 성서의 달란트 일화처럼 돈을 무작정 묻어 두는 것만큼 미련한 짓은 없다.
‘인구 감소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미래를 준비하자’는 현실론도 제기된다. 과거 일본이 내놓은 ‘1억 총활약 계획’도 비슷한 취지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니다. 저출생 예산을 쏟아부어도 효과가 현실화되려면 십수년 이상 걸릴 공산이 크다. 하지만 저출생 정책의 목적은 단순히 아이 숫자만 늘리는 게 아니다. 청년층이 아이를 기꺼이 낳아서 잘 키우고, 아이들이 자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이는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이젠 우리가 그간 외면했던 점심값을 치를 때다.
이두걸 전국부장
2024-02-19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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