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대의 방방곡곡 삶] 한 병 아주머니

[김주대의 방방곡곡 삶] 한 병 아주머니

입력 2020-11-24 17:36
업데이트 2020-11-25 01:27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이미지 확대
김주대 문인화가·시인
김주대 문인화가·시인
강릉 경포대. 손님이 없는 식당이 있어서 들어갔다.

주인아주머니 혼자 티브이를 보고 계신다. 이만 원짜리 ‘부대찌개’를 시키고 혹시 ○○술이 있냐고 물었더니 사다 주겠다고 하신다.

냄비를 불에 올려놓고는 앞 슈퍼에서 ○○ 한 병을 사 오신다. 딱 한 병. 도수가 낮은 술이라 두어 병은 마시는 술이었는데 아주머니는 한 병만 들고 오신다. 나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아주머니를 쳐다보며 말을 건넨다.

“거~참 아주머니, 장사를 그렇게 정직하게 하시면 어째요?”

“네? 무슨 말씀인가요? 호호호.”

“아, 한 두서너 병 사 오셔서 파셔야지요. 한 병 달란다고 정말 딱 한 병만 사 오시는 그런 정직함으로 어째 장사를 하시려고요. 하하하.”

“제가 좀 맹해요. 이따가 필요하시면 또 사다 드릴게요.”

“그럼 한 병씩 한 병씩 열 번 다녀오세요.”

“네. 호호호호.”

맘씨 착한 아주머니가 반찬을 내오신다.

어제 들어간 바로 옆 식당의 반찬은 우중충하고 짠 데다가 쿰쿰한 냄새까지 났는데 이 집 반찬은 참 깔끔하다. 색깔도 좋고 특히 겉절이김치가 일품이다.

게다가 부대찌개의 색깔이 얼마나 고운지 색에서 맛이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딱 한 병 사 오시는 성격이 맛있는 반찬에도 음식에도 딱 그만큼의 정직함으로 들어가 있는 모양이다.

큰 컵에 따라 ○○술을 두 번에 다 털어 넣자 아주머니는 놀라신다.

“아이고, 그걸 두 번에 다 드세요?”

“제가 성질이 좀 급해요. 얼른 먹고 들어가서 일하려고요.”

“여기 사람 아닌 것 같은데, 이 시간에 뭔 일을 하시려고?”

“네, 여 앞 여관에서 자요. 머 그냥 사진도 정리하고 글도 쓰고요….”

“기자인가요?”

“아뇨, 기자는 아니고 남자입니다.”

“남잔 줄은 아까부터 알았어요. 찌개 맛이 어때요?”

“아따~ 참말로 맛있네요. ○○ 한 병 사 오실 때부터 이 집 음식은 맛이 있겠구나 했지요. 아주머니, 좀 대충 얼렁뚱땅 설렁설렁 장사하세요. 사기꾼 거짓말쟁이들이 검찰도 하고 법관도 하는 세상인데요 머.”

“네? 검찰이 다 사기꾼인가요?”

“네, 엄청난 사기꾼들입니다.”

“아이고, 아저씨 그런 말 함부로 하면 경찰이 잡아가요.”

“잡아가라고 이러고 떠들고 다녀요.”

“하기야, 참 어디나 힘 가진 사람들이 못됐긴 해요. 한 병 더 사다 드릴까요?”

“네.”

아, 맘 착하신 아주머니가 또 딱 한 병만 사 오신다.

화가 나서 버럭 소리를 지른다.

“아니, 아주머니 또 한 병만 사 오셨어요?”

“아이고, 사다 달라면 또 사다 드릴게요.”

그렇게 한 병, 한 병, 한 병, 한 병, 네 병을 마시고 인사를 하며 식당을 나오는데, ‘한 병의 정직함’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다소 융통성 있게 바뀌었는지 아주머니께서 뒤통수에 대고 묻지도 않은 한마디를 하신다.

“아침 해장국 드실라면 오세요. 북엇국 맛있게 끓여 드릴게요.”

“네, 아주머니 이제 장사 좀 할 줄 아시네요. 내일 아침에 꼭 올게요. 하하하하.”
2020-11-25 30면
많이 본 뉴스
종부세 완화, 당신의 생각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종합부동산세 완화와 관련한 논쟁이 뜨겁습니다. 1가구 1주택·실거주자에 대한 종부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종부세 완화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완화해야 한다
완화할 필요가 없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