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백지신탁, 공익과 사익 사이

[씨줄날줄] 백지신탁, 공익과 사익 사이

박현갑 기자
박현갑 기자
입력 2024-10-20 23:42
수정 2024-10-20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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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정부 공직자 윤리위원으로 차관들과 싸워 가며 공직자 재산신고 항목에 주식을 포함하는 것을 이뤄 낸 것은 지금도 뿌듯하다. 국무총리직 제안에 국회의원 공천 약속 등을 받았지만 ‘내가 그 자리에 앉으면 나도, 그 자리도 망합니다’ 하고 사양했다. 돈과 권력이 생기는 곳에 서지 않기로 했다.”

재단법인 교육의봄 홈페이지에 연재 중인 손봉호 이사장의 회고록 일부다. 명예와 권력을 사양했다는 그는 이사장과 명예이사장 자리를 연거푸 맡으면서도 수당이나 회의비를 받기는커녕 회비를 내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봉사하는 셈이다.

이런 가치관을 가진 공직자가 많다면 얼마나 좋을까. 최근 문헌일 서울 구로구청장이 백지신탁을 거부하며 구청장직을 포기한 사건은 이 같은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그는 170억원대 비상장 회사의 주식을 갖고 있었다. 정부는 직무 관련성이 있다며 백지신탁을 결정했다. 고위 공직자는 직무와 관련된 주식을 3000만원 초과 보유 시 이를 팔거나 금융기관에 백지신탁해야 한다. 이는 공직 수행 중 이해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다.

그러나 문 구청장은 직무 관련성이 없다며 행정소송을 냈고 1, 2심에서 패소하자 구청장직을 던졌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내년 4월 보궐선거를 치르게 됐다. 선거비용 30억원은 43만여 주민들이 부담해야 한다. 백지신탁 제도는 2005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미 문제의 소지가 분명한 사람을 애초에 공천했던 국민의힘이 개탄스럽다.

돈,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사회적 욕망의 발로다. 이를 어떤 방식과 목적으로 좇느냐는 사회 공동체가 주목하는 중요한 화두다. 필수의료는 기피하고 돈이 되는 진료 분야로만 의사들이 몰린다. 보수가 낮다며 교단을 떠나는 교사도 많아졌다.

공익보다 사익을 쫓는 사회는 퇴보하는 사회다. 우리 사회가 쇠락의 길로 빠져들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2024-10-2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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