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깨어진 남북관계 다시 붙이기/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열린세상] 깨어진 남북관계 다시 붙이기/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입력 2020-10-11 17:12
수정 2020-11-26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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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주말에 부모님이 오랫동안 간직해 온 할머님의 재봉틀을 가지고 와 미술을 전공하는 딸에게 선물로 주었다. 할머님이 시집오실 때 쓰던 것을 가지고 온 것이라고 하니 줄잡아 100년은 된 골동품이지만 아직 멀쩡하다. 어릴 적 할머님이 재봉틀을 이용해 손자 손녀의 옷을 만들어주시던 모습이 선하다. 아버님 말대로 조상의 피가 흐르기 때문인지 딸은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 안 입는 옷으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만들었다. 퇴근해 오면 내가 버린 낡은 흰 셔츠가 알록달록한 색을 입힌 셔츠재킷으로 변신해 있고 엄마의 무릎 나간 바지는 세련된 치마로 재탄생했다. 지키려면 언젠가는 그냥 버려야 하고, 바꾸면 다시 쓸 수 있다는 걸 딸에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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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엽 교수 할머니가 시집 올 때 가마 속에 넣어 오셨던 싱거(singer) 재봉틀.
김동엽 교수 할머니가 시집 올 때 가마 속에 넣어 오셨던 싱거(singer) 재봉틀.
일본 도자기 공예 기법 중에 ‘긴츠쿠로이’라는 것이 있다. 도자기의 손상된 부분을 옻칠로 접합하고 금가루를 뿌려 수선하는 기법이다. 옛날에는 그릇이 귀해 깨져도 다시 접합해 사용하는 일이 흔했다. 깨진 도자기에 난 갈라진 틈을 그저 볼품없는 흔적으로 여기지 않았다. 정성을 다해 고치고 보니 깨지기 전보다 더 아름다운 그릇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깨어지므로 다시 만들어진다. 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지키려고만 하면 발전은 없다. 잘한 것은 박수 받아 마땅하고 못한 것은 겸허히 비판을 받아들여야 한다. 칭찬보다 상처와 고통을 어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변화가 찾아온다. 변화는 우리에게 오는 거대한 파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 스스로가 예측 불가능한 세상을 향해 보내는 보다 나음을 위한 몸부림의 파장이기도 하다.

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환경이 상수가 된 시대를 살고 있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올해 북한의 정면돌파전과 미국의 대선으로 어쩌면 물리적으로 단기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인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한미관계의 균형추도 옮겨진 것처럼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언급했지만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쉬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최근 대북정책에 대한 우리 정부의 말들을 보면 2018년과 2019년에 즐겨 쓰던 남북관계 발전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어찌 보면 4·27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선언의 복원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한미관계를 언급하면서 한미동맹 강화를 의미하는 단어를 부쩍 많이 사용한다. 남북관계로 인해 생기는 한미관계의 불편함을 이제 더이상 감수하지 않기로 한 것일까? 혹시 잔여 임기 동안 한미관계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최소한 4·27 이전으로 돌아가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일까 두렵다.

남북관계 업적은 억지로 지키려 한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대북정책은 한 정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다음 정부가 이어 다시 쓸 수 있게 단단하게 잡아두면서도 열어두어야 한다. 비대면 시대에 걸맞은 남북관계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한 때이다. 종전선언의 국제적 지지를 호소하고 K방역을 내세웠다면 북미관계에 끌려가지 않는 남북관계와 보편적 국제규범의 틀 속에서 남북관계를 고민해야 한다.

변화 속에서도 끊임없이 변하지 않은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남북관계의 여정은 긴츠쿠로이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과 닮았다. 100년이 지난 할머니의 재봉틀이 두 세대를 건너 딸에게 전해졌다. 과거 100여년 동안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가치를 위해 시도해 왔던 우리의 무수한 시행착오가 한반도라는 도자기에 분단이라는 깊은 균열을 만들었다. 그 균열을 매워 더 아름다운 새로운 한반도 100년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희망을 다음 세대에게 전해줄 수 있었으면 한다.

위험을 회피할 것이 아니라 위험에 다가서는 선제적 용기로 지금 깨어진 남북관계를 다시 붙이고 금가루를 뿌려 새롭게 태어나게 해야 한다. 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남북관계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역진 불가한 한반도 평화(CVIP)를 위해서는 변화 속에 우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부터 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 수많은 상처를 이겨내고 몸부림을 통해 변화의 파장을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2020-10-1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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