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악역을 해본 적이 없어요. 보여주지 않았던 연기를 할 기회가 많지 않더라고요.”

엄지원<br>연합뉴스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감독 이해영)에서 비밀을 간직한 기숙학교의 교장역을 맡은 배우 엄지원(38)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배우생활 13년 만에 첫 악역이다.

”이해영 감독님의 전작 ‘페스티발’(2010)에 출연한 인연이 있어요. 감독님이 이번 영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어떤 이야기인지 알고 있었어요. 교장을 꼭 나이 많은 사람이 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며 농담 삼아 나중에 제가 교장역을 해준다고 했죠. 그런데 이 감독님이 1년 뒤에 정말 시나리오를 제게 주며 교장역을 맡아달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우정 출연 정도로 생각했어요.”

곧 영화의 개봉을 앞둔 엄지원은 “리포트를 제출했고, 교수님의 채점을 기다리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2013년 아동 성폭행에 대한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 ‘소원’에서 주연을 맡은 이후 차기작으로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은 조연을 선택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실제로 소속사에서 이거(조연) 정말 할거냐고 하더라고요. 더 좋은 거(주연) 하라는 조언도 많았고요. 이번 영화는 소녀들이 주연인 영화지만, 제가 들어가 무엇인가를 만들어낼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분량은 적었지만, 외적으로 다양한 변주를 할 수 있는 캐릭터라 재미있을 것 같았죠.”

그녀는 배우들이 연기 변신을 할 기회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했다.

”’소원’에서 아줌마 역할을 하고 나니 이후 계속 아줌마 역할만 들어와요. (웃음) 다양한 캐릭터에 관한 갈증이 늘 있죠. 배우는 새로운 배역을 항상 기다리는데 기회는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경성학교에서 조연을 맡았지만, 첫 악역을 해볼 기회였죠.”

처음 맡은 악역인 만큼 야무지게 해내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인물을 풍성하게 만들고 싶어 감독에게 교장의 일본어 대사를 늘려달라고 했고, 일본어 대사 연습에 매진했다.

엄지원은 “극 중 한국말 대사는 기억 안 나도 일본어 대사는 지금도 줄줄 외운다”며 웃었다.

이번에 맡은 배역의 캐릭터 사랑도 남달랐다. 영화 자체가 교장이라는 악역에 친절할 수 없는 구조였다며 눈물을 비추기도 했다.

”악역에도 악인이 될 수 있는 사연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비뚤어진 욕망을 가졌지만 모든 면에서 너무도 뛰어났던 여인, 기회가 척박했던 조선을 버리고 일본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한 여성 교육자이자 과학자로 캐릭터를 구축했어요. 교장이라는 캐릭터를 깊이 이해했고, 이해하다 보니 사랑하게 됐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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