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리커스교도소에 꽃핀 작은 기적

뉴욕 리커스교도소에 꽃핀 작은 기적

입력 2010-12-28 00:00
업데이트 2010-12-28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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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창속 아빠가 동화책 읽어줘요”

하루 23시간을 독방에서 보내는 고독한 죄수. 바깥 세상에 남겨진 어린 세 아들과 아내. 가장 없는 집에서 매일 끼니를 걱정하며, 지옥 같은 삶을 살던 뉴욕 브루클린의 이 가정에 교도소에서 도착한 소포와 함께 변화가 시작됐다. 소포 속엔 아버지가 읽어주는 동화 CD가 들어 있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존재를 느끼기 시작했고, 아내는 출소 후 남편과 함께 꾸려갈 가정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졌다. ‘책’이 만들어낸 기적. 뉴욕 최대의 교도소인 리커스 섬의 작은 실험이 만들어낸 결과다.

뉴욕타임스(NYT)는 26일(현지시간) 뉴욕시 교정국이 올해 시작한 ‘아빠, 책을 읽어주세요’ 프로그램이 이끌어낸 재소자와 재소자 가정의 긍정적인 변화를 집중 조명했다. 42살의 호세 로사도는 1989년부터 폭력, 마약 등으로 수감을 반복하며 거의 10년을 리커스에서 보냈다. 10학년(고등학교 1학년) 중퇴인 그의 수감 기록은 무려 6쪽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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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리커스 섬 교도소에서 재소자 호세 로사도(왼쪽)가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다.  뉴욕타임스
뉴욕 리커스 섬 교도소에서 재소자 호세 로사도(왼쪽)가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다.
뉴욕타임스
독방에 갇혀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로사도는 올해 초부터 ‘양말 속의 여우’ ‘빨간 강아지 클리포드’ 같은 동화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녹음해 보내자는 교정센터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부터다. 마약 거래상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 후안 카마초, 세 딸의 아버지인 무기 거래상 퀴드 레딕도 프로그램에 동참했다. 세 사람의 교육을 위해 3800달러가 교도소 내 테일러 교육센터에 배정됐고, 강의실 한쪽 벽에는 동화책과 녹음 시설이 마련됐다. 교정 책임자인 도라 시리로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버지가 되는 것과 같은 뜻이고,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며 “재소자 자녀들이 아버지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재소자들에게 동화책 녹음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전을 찾아가며 단어의 뜻을 익혀야 했고, 거친 말투를 고치는 데 많은 시간이 들었다. 동화책 속 등장인물에 맞게 높은 목소리를 내는 법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우스꽝스러운 표현도 배워야 했다. 교도소 측은 이렇게 녹음된 CD를 각 재소자의 가정으로 보냈다. NYT는 “시간이 흐를수록 재소자들은 아버지의 모습을 갖춰가면서, 각자의 아이들에게 적합한 동화책을 고를 수 있게 됐다.”면서 “자기들이 받지 못한 사랑을 아이들에게는 전해주겠다는 의지도 강해졌다.”고 전했다.

지난달 프로그램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가족들의 교도소 방문도 이뤄졌다. 면회실에는 알록달록한 의자와 책장이 들어섰고, 이는 가정적인 분위기를 위해 둥그렇게 배치됐다. 이날 리커스 섬에서는 이전에 들린 적 없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로사도는 “아이들에게 책이 정말 많은 것을 알려준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면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이 엄마의 일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아이들에게 가깝게 다가갈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2010-12-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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