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대사관, 64년 전 개설 도운 동포 “누군지 몰라”

주일대사관, 64년 전 개설 도운 동포 “누군지 몰라”

입력 2013-07-18 00:00
업데이트 2013-07-18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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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대표부 개설 임차료 기부한 조규훈 씨…기록 없어

주일 한국대사관이 3년간의 공사를 마치고 새 청사로 이전한 것을 계기로 1948년 정부 수립 직후 주일 한국대표부 개설을 도운 재일동포의 숨은 헌신에도 눈길이 쏠리고 있다.

주일 한국대사관은 2010년 5월부터 3년간 공사를 거쳐 도쿄 미나미아자부에 지상 7층, 지하 1층의 청사와 대사 관저를 지은 것을 계기로 최근 대사관 1층에 주일 공관의 발자취를 정리한 역사자료관 동명실(東鳴室)을 마련했다.
주일대사관 개관식서 건배사하는 샤이니 일본에서 인기있는 한국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멤버 민호가 관저 앞 뜰에서 열린 축하 리셉션에서 건배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일대사관 개관식서 건배사하는 샤이니
일본에서 인기있는 한국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멤버 민호가 관저 앞 뜰에서 열린 축하 리셉션에서 건배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962년 대사관 부지를 무상으로 기증한 재일동포 고(故) 서갑호 씨의 호를 따 이름 지은 이 자료관에는 대사관 승격 전 주일 한국대표부가 1949년 1월 도쿄 긴자의 핫토리(服部)빌딩(현재의 긴자 와코 백화점)에서 문을 열었다는 사실 등을 담은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하지만 주일 한국대표부가 첫발을 뗀 곳이 구체적으로 핫토리 빌딩 4층이었고, 그 임차료 1천만엔과 직원 관사 구입비용 300만엔을 재일동포 조규훈(1906∼2000)씨가 기부했다는 사실은 적혀 있지 않다.

재일동포 원로 이봉남(94)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장의 증언과 조씨가 남긴 회고록에 따르면 주일 대표부의 정한경 초대 공사는 1948년 초 효고현에서 고무 공장을 운영하던 조씨 자택을 방문, 대표부 개설 비용을 달라고 요청했다. 정부 수립 전 한국에는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에서 태어난 조씨는 1923년 일본에 건너가 자수성가한 기업가로, 1946년 오사카에 한국계 민족학교인 백두학원을 설립한 사회사업가이기도 했다.

당시 정 공사는 대표부 사무실 임차 비용으로 500만엔을 요청했지만, 조씨는 ‘해방 후 처음으로 일본 땅에 태극기를 내거는데 초라한 사무실을 얻어서는 안 된다’며 친구 2명과 숙부에게서 꾼 돈까지 합쳐서 1천만엔을 줬다.

이봉남 회장은 “당시 20만∼80만엔이면 어지간한 집을 살 수 있었으니까 1천만엔이면 지금 돈으로는 수십억∼수백억원에 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 돈으로 연합군 최고사령부(GHQ)가 PX(군부대 매점)로 쓰려고 몰수한 핫토리빌딩 4층을 통째로 임차했다.

이봉남 회장에 따르면 조씨가 추가로 지원한 300만엔으로는 기타사토(北里)대학 부근에 대표부 직원이 사용할 관사를 사들였다.

이후 조씨는 정한경 공사의 부탁으로 1949∼1950년 도쿄에서 민단 중앙 단장 일까지 맡느라 효고현 공장 운영을 등한시했고, 이후 사업이 기울어 정작 자손에겐 별 재산을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이같은 기록은 주일 대사관은 물론 외교부 사료팀, 국가기록원에도 전혀 남아있지 않다. 정부가 보유한 1945∼1950년 사이의 기록이 워낙 빈약하기 때문이다. 조규훈씨와 정한경 공사가 돈을 주고 받은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 조규훈 선생 현창 준비회’(대표 이정림)나 조씨 자녀들 외에는 이봉남 회장 등 일부 교포 원로가 당시 일을 기억할 뿐이다.

정부는 18일 미나미아자부 새 청사에서 김규현 외교부 제1차관과 서갑호씨의 유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청사 개관식을 열 예정이다. 조규훈씨 유족은 이 자리에도 초대받지 못했다.

대사관 관계자는 “향후 동명실 자료를 보강할 기회가 있을 때 조규훈씨 관련 자료를 보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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