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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통에 우크라 엔진을 러軍에 납품?” 반역자의 최후

“전쟁통에 우크라 엔진을 러軍에 납품?” 반역자의 최후

권윤희 기자
권윤희 기자
입력 2022-10-24 16:12
업데이트 2022-10-24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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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이하 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국가보안국(SBU)이 세계 최대 전투기 엔진 제조기업인 ‘모터 시치’ 회장을 반역 혐의로 구속했다. 왼쪽은 2019년 러시아 ‘MAKS-2019’ 에어쇼에서 비행 중인 MI-28N 헬기. 2022.10.23 우크라이나 국가보안국·타스 연합뉴스
22일(이하 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국가보안국(SBU)이 세계 최대 전투기 엔진 제조기업인 ‘모터 시치’ 회장을 반역 혐의로 구속했다. 왼쪽은 2019년 러시아 ‘MAKS-2019’ 에어쇼에서 비행 중인 MI-28N 헬기. 2022.10.23 우크라이나 국가보안국·타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에 협력한 자국 방위산업체 회장을 ‘반역’ 혐의로 잡아들였다. 23일(이하 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국가보안국(SBU)은 전투기 엔진 제조기업인 ‘모터 시치’ 회장을 반역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SBU는 22일 뱌체슬라프 보구슬라예프(83) 모터 시치 회장을 전격 체포했다. 러시아 협력 활동 및 군수품 불법 납품 혐의로 그를 구금했다.

SBU에 따르면 보구슬라예프 회장은 러시아 최대 국가방산업체 로스텍(Rostec)과 결탁해 러시아군에 전투기 엔진을 대량 공급했다. 무역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중동과 유럽, 동아시아 루트를 활용한 가짜 주문서를 만들었다. 주문 조작을 통해 제3국으로 간 모터 시치의 군수품은 러시아로 흘러들어갔다.

●러시아군 ‘나이트헌터’ 구제한 건 다름아닌 우크라이나
SBU는 러시아가 모터 시치를 통해 입수한 우크라이나의 예비부품으로 공격헬기를 생산 및 수리해 전장에 투입했다고 봤다. 러시아 공격헬기 Ka-52 알리가토르(악어)는 물론 ‘나이트헌터’로 불리는 러시아 육군 주력 공격헬기 Mi-28N, 특수작전용 신형 공격헬기 Mi-8AMTSh-VN에 모터 시치 엔진이 사용된 걸로 파악했다.

모터 시치 회장 겸 수석 엔지니어인 보구슬라예프는 1983년 소비에트 연방의 우랄스크(현재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났다. 2000년 우크라이나 제2대 대통령 레오니드 쿠치마 재임 시절 공학 발전에 탁월한 공헌을 한 것을 인정받아 ‘우크라이나의 영웅’ 칭호와 함께 최고 훈장을 받았다. SBU는 그의 모든 범죄 행위를 증거 문서화했으며, 보구슬라예프 회장을 재판에 회부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2일(이하 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국가보안국(SBU)이 세계 최대 전투기 엔진 제조기업인 ‘모터 시치’ 회장을 반역 혐의로 구속했다. 2022.10.23  우크라이나 국가보안국
22일(이하 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국가보안국(SBU)이 세계 최대 전투기 엔진 제조기업인 ‘모터 시치’ 회장을 반역 혐의로 구속했다. 2022.10.23
우크라이나 국가보안국
22일(이하 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국가보안국(SBU)이 세계 최대 전투기 엔진 제조기업인 ‘모터 시치’ 회장을 반역 혐의로 구속했다. 그는 2000년 우크라이나 제2대 대통령 레오니드 쿠치마 재임 시절 공학 발전에 탁월한 공헌을 한 것을 인정받아 ‘우크라이나의 영웅’ 칭호와 함께 최고 훈장을 받은 바 있다. 2022.10.23  우크라이나 국가보안국
22일(이하 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국가보안국(SBU)이 세계 최대 전투기 엔진 제조기업인 ‘모터 시치’ 회장을 반역 혐의로 구속했다. 그는 2000년 우크라이나 제2대 대통령 레오니드 쿠치마 재임 시절 공학 발전에 탁월한 공헌을 한 것을 인정받아 ‘우크라이나의 영웅’ 칭호와 함께 최고 훈장을 받은 바 있다. 2022.10.23
우크라이나 국가보안국
22일(이하 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국가보안국(SBU)이 세계 최대 전투기 엔진 제조기업인 ‘모터 시치’ 회장을 반역 혐의로 구속했다. 사진은 SBU가 압수한 그의 소지품. 2022.10.23  우크라이나 국가보안국
22일(이하 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국가보안국(SBU)이 세계 최대 전투기 엔진 제조기업인 ‘모터 시치’ 회장을 반역 혐의로 구속했다. 사진은 SBU가 압수한 그의 소지품. 2022.10.23
우크라이나 국가보안국
●최대 고객 잃은 모터 시치와 부품 절실한 러시아의 결탁
사실 보구슬라예프 회장의 ‘반역’ 행위는 그리 놀랍지 않다. 그는 1994년 모터 시치 대표이사 겸 이사회 의장을 맡아 사업을 총괄해왔다. 2006년 모터 시치 명예 회장에 등극했으며 공교롭게도 그때부터 2019년까지 친러시아 성향의 ‘지역당’ 소속 국회의원을 지냈다.

우크라이나 방위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러시아 입장에서도 보구슬라예프 회장의 ‘반역’은 절실했다.

우크라이나는 옛 소련의 주요 무기생산 기지였다. 특히 1907년 설립된 모터 시치에 러시아는 최대 고객이었다. 소련의 군용기와 민간 항공기 엔진을 만들던 국영기업이었던 모터 시치는 우크라이나 독립 후 민영화됐는데, 이후에도 매년 수백 대의 헬기용 엔진을 러시아에 팔았다.

하지만 2014년 크림반도 강제 병합 후 러시아로의 무기 수출이 전면 금지되면서 모터 시치도 러시아도 모두 난관에 봉착했다. 일각에선 부품 확보가 어려워진 러시아가 무기생산 기지 확보를 위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올 정도였다.
2019년 러시아 ‘MAKS-2019’ 에어쇼에서 비행 중인 MI-28N 헬기. 우크라이나 모터 시치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으로 대러제재에 따른 무기 수출 금지가 내려질 때까지 러시아에 매년 수백 대의 엔진을 납품했다. 타스 연합뉴스
2019년 러시아 ‘MAKS-2019’ 에어쇼에서 비행 중인 MI-28N 헬기. 우크라이나 모터 시치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으로 대러제재에 따른 무기 수출 금지가 내려질 때까지 러시아에 매년 수백 대의 엔진을 납품했다. 타스 연합뉴스
2014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우크라이나 방위산업에 대한 러시아의 높은 의존도가 우크라이나 침공의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보고서를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1990년대 크렘린에 자문한 안데스 아슬룬드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원도 당시 파이낸셜타임스에 “러시아의 군산복합체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력하게 찬성하고 있으며, (방위산업) 공장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자 동남부 우크라이나를 합병하고 싶어한다”고 밝혔다.

그 와중에 옛 소련의 항공기 엔진 제조 기술에 눈독을 들이던 중국은 모터 시치 인수에 뛰어들었다. 2017년 베이징 신웨이그룹 산하 투자회사 스카이리존을 앞세워 모터 시치 지분 50%를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확보했다. 당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모터 시치 매각을 금지하라는 압력을 넣었다.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높았던 우크라이나 정부는 한동안 망설였다. 하지만 결국 러시아와의 대립각 속에 군사원조를 제공한 우방국 미국 손을 들었다.
우크라이나의 세계 최대 전투기 엔진 제조기업 모터 시치 본사 전경.  위키피디아 자료사진
우크라이나의 세계 최대 전투기 엔진 제조기업 모터 시치 본사 전경.
위키피디아 자료사진
●중국 찍혀나간 자리 차지한 러시아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해 3월 모터 시치를 국유화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중국이 찍혀나간 자리는 러시아가 차지했다. 우크라이나 방위산업에 대한 러시아의 높은 의존도가 우크라이나 침공의 변수가 될 수 있다던 서방의 예상이 적중한 셈이다.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주요 방위산업 도시이자, 모터 시치 본사 및 공장이 집결해 있는 자포리자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자포리자의 전략적 가치를 아는 우크라이나의 철통 방어에도 자포리자 원전을 볼모로 삼으며 압박했다. 모터 시치를 통해 러시아에 무기를 판매한 것이 우크라이나엔 자충수가 된 꼴이었지만 결국 러시아는 자포리자를 절반 이상 장악하게 됐다.

SBU가 모터 시치 보구슬라예프 회장의 구체적인 ‘반역’ 시기에 대해 밝히진 않았지만, 그는 러시아가 자포리자를 장악하기 전까지 러시아 방산업체 로스텍과 결탁해 불법으로 군수품을 공급한 걸로 보인다. 다만 러시아가 이미 자포리자의 60%를 손에 쥔데다, 지난달 주민 투표를 거쳐 합병을 선언한 터라 보구슬라예프 회장 구속이 러시아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전망이다.
권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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