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中 견제 위해 ‘여성 인권 동맹’ 확산 나선 美
중국, 당대회 앞두고 “여성 권리 증진” 대대적 타전
2020년까지만 해도 WEF 성격차지수 中이 韓 앞서
“해리스 美 부통령, 尹에 한국의 성평등 현황 거론”
우리 정부, 워싱턴의 ‘여성 권리’공세 예상 못한 듯
바이든, ‘민주주의 동맹은 중국과 달라야 한다’ 판단
앞으로 우리나라에 “여성 정치인 늘리라” 요구할 듯
윤석열(오른쪽)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기사 중국은 여성 문제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공산당 혁명 초기 마오쩌둥은 봉건적 남존여비 사상을 비판하며 “여성은 능히 하늘의 절반을 받칠 수 있다”(妇女能顶半边天)고 선언했다. 당시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이었다. 성평등을 중시하는 태도는 공산당과 맞서 싸운 국민당도 마찬가지였다. 1980년대 필자가 타이베이의 한 대학을 방문했을 때 한 교수가 “이제 대만은 여성 권력이 너무 강해 성평등을 말하려면 남성 권리 진작을 논해야 한다”고 말한 기억이 난다.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대만 여성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깔깔거렸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중국 본토나 대만에서 여성의 권위가 높아진 것은 국공내전 등 전쟁 장기화의 영향이 컸다. 남자들이 오래 집을 비우면서 집안의 대소사는 여성들이 도맡아 처리하게 됐다. 이후 귀향한 남자들은 그간의 사정을 알 수 없으니 여자들에 계속 일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이 중국 내 성평등 의식이 싹튼 이유를 일부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20년 12월 중국 ‘미투 운동’의 상징이 된 저우샤오솬이 자신을 지지하는 이들이 응원의 박수를 받으며 성희롱 재판에 참석하고 있다. 지난 2014년 중국 국영 CCTV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그는 유명 진행자 주준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2018년 소송을 냈고 2년이 지나서야 재판이 시작됐다. 저우샤오솬은 지난해 재판에서 패소했다. 서울신문 DB
이제 우리가 성평등 분야에서도 중국과 일본을 이겼으니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해야 할까.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0위 경제대국이자 케이팝 걸그룹이 전 세계를 휘어잡은 대한민국의 성평등 지수가 베트남이나 캄보디아보다도 낮은 99위라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의 불만이 큰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문제를 담아 화제가 됐던 영화 ‘82년생 김지영’ 포스터.
필자는 중국 정부의 여성 관련 노력을 소개하며 ‘시 주석이 이만큼 성평등 문제를 잘 처리하고 있다’거나 ‘한국이 중국을 벤치마킹해 분발해야 한다’는 말을 꺼내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향후 한미 관계에서 여성 문제가 우리의 발목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우려가 된다는 점을 알리고 싶어서다. 프레시안 보도에 따르면 최근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은 윤석열 대통령을 예방하면서 한국의 성평등 상황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리스 부통령은 방한 중 한국의 여성 리더들과 따로 만나 간담회를 가질 만큼 이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해리스 부통령이 윤 대통령 접견시 “여성 관련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브리핑했다가 이후 보도자료를 내 정정하는 등 촌극을 빚었다. 미국이 여성 문제로 우리의 정곡을 찌를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미국대사관저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각 분야의 여성 리더들을 만나 간담회를 갖고 있다. 왼쪽부터 김연아 전 피겨선수, 최수연 네이버 대표, 백현욱 한국여자의사회 회장, 김정숙 한국여성정치문화연구소 회장. 오른쪽부터 김사과 작가, 이수정 KBS 앵커, 윤여정 배우. 사진공동취재단
바이든 행정부가 국제질서 재편을 위한 새로운 무기로 성평등 전략을 표방하고 있을 때 윤석열 정부는 되레 “여성가족부를 없애겠다”고 선언하는 등 과거로 회귀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보며 필자는 우리 정부에 ‘과연 콘트롤 타워라는 것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대선 공약인 ‘여가부 폐지’를 주워 담기 어렵다면 적어도 미국의 성평등 제고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지 ‘플랜B’는 세워놨어야 한다. 머지 않아 해리스 부통령의 방한 보고 내용이 전 세계로 퍼질 것이다. 대통령실이 이를 나몰라라 하며 묻고 지나갈 수는 없다. 미국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윤 대통령에 여성 권리 문제를 제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이에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하다. 혹시라도 중국에 성격차지수를 역전 당하는 일이라도 생기면 우리 국민들은 정말로 부끄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 전략 컨설턴트 겸 칼럼니스트.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SDS 중국법인장, 디지카이트 대표, 中 TCL 최고정보책임자(CIO), SK엔카 중국본부장, 다국적기업 카르타센스 아태 담당, 플랜티넷 부사장 등을 지냈다. 국내외 주요 기관과 업체에 중국 관련 정보 분석 및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이박사중국뉴스해설’을 운영한다. 저서로 ‘중국의 선택’(2021), ‘중국주식 투자비결’(2022) 등이 있다.
정리 베이징 류지영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