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본항복 전인 1944년초부터 38선 검토했다”

“미국, 일본항복 전인 1944년초부터 38선 검토했다”

입력 2013-08-13 00:00
수정 2013-08-1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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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한반도 분할의 역사’서 주장

미국이 일본이 항복하기 전인 1944년 초부터 이미 38선을 구체적으로 검토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최근 펴낸 ‘한반도 분할의 역사’에서 “38선 획정의 구체적 기안 과정은 1944년 일본의 항복이 가시화돼 미국이 한반도 점령안을 검토하게 되는 시점부터 새롭게 고찰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교수의 이러한 주장은 ‘30분 만에 그어진 38선’이라는 기존 학설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지금까지는 1945년 8월 10일 일본이 항복 의사를 알려오자 한반도 문제에 관해 사전 준비가 없었던 미국이 다음 날 새벽 30분 이내에 군사적 편의에 따라 급작스럽게 38선을 그었다는 견해가 정설이었다.

실제로 미국 전쟁부 작전국 산하의 전략정책단에서 정책과장보를 맡았던 딘 러스크 대령은 회고에서 동료 찰스 본스틸 대령과 함께 사무실 벽에 걸려 있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도를 보고 11일 새벽 2시부터 3시 사이에 즉흥적으로 38선을 그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교수는 13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러스크 대령의 이러한 증언이 사실은 위증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38선 획정의 기안에 사용된 원본 지도는 아시아 전역을 포괄하는 축적 1:17,500,000의 지도”라며 “문제는 이 지도에 40도선과 35도선만 나와 있을 뿐 38도선은 명기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러스크·본스틸 대령은 서울과 부산 그리고 인천이 분할선 이남에 있으므로 38선을 채택했다고 말하지만, 38선이 표시되지 못할 정도로 스케일이 큰 지도에서 어떻게 서울과 인천이 38선 이남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따라서 38선 획정에 내셔널 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 지도를 사용했다는 증언은 38선이 그 이전부터 고려됐다는 사실을 은폐하려는 의도된 위증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결정적으로 러스크 대령의 직속상관인 린컨 준장의 직속상관이었던 헐 중장이 1949년 6월 17일 해리스 대령과 한 전화 인터뷰 녹취문을 미국 국립문서박물관에서 발굴해 공개했다.

이 자료에서 헐 중장은 “38선은 포츠담에서 마련됐다”고 말한다. 결국 38선 획정은 포츠담회담 당시인 1945년 7월 25일경 헐 중장 등이 착안했고 그 선의 확정이 8월 11일에 된 것임을 알 수 있다고 이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따라서 러스크·본스틸 대령의 증언에 의존했던 기존의 준비부족론은 수정돼야 하며 38선의 획정은 상당 기간 미국 정부 내에서 구상했던 한반도 분할 논의의 완결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실제로 미국 전쟁부 전략정보국의 연구분석과가 일찍이 1945년 2월부터 작성했던 여러 종류의 한반도 지도들에서는 38선은 물론 도계 등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38선은 미국이 상당한 기간에 걸쳐서 구상한 점령 논의의 결론이었다”면서 “정치적인 고려를 포함한 군사점령은 1944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38선은 동북아시아의 가능한 많은 지역에서 소련의 세력권 확장을 제어하려는 정치적 의도 아래 결정된 정치적 분할선이었다”면서 “미국은 군사적 편의에 따라 38선을 그었다고 변명했지만, 군사적 목적은 구실일 뿐 실제로는 정치적 목적을 심중에 숨긴 채 선을 그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정치적 운명은 태평양전쟁을 주도한 미국에 의해서 주로 결정됐고 한반도 분할점령도 미국이 주도해 결정한 정책들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이 이 교수 주장의 핵심이다.

이 책은 한반도 분할이 처음으로 논의됐던 임진왜란부터 6·25 전쟁까지를 아우른다. 420년 전의 내용은 문헌사료와 금석문을 기초로 한국, 일본, 중국의 문헌을 모두 섭렵했고, 19세기와 20세기 초 자료는 일본·러시아의 외교문서 등을 골고루 활용했다.

특히 38선 획정을 비롯한 전후 한반도 상황을 규명하기 위해 미국의 내셔널 아카이브 기밀문서, 미국외교기밀문서(FRUS), 대외관계협의회 문서, 국무부 자료, 작전국 문서, 미공간 매뉴스크립트 등을 활용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942쪽. 4만8천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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