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시해…생각보다 쉬웠다” 日외교관 추정 편지 발견

“명성황후 시해…생각보다 쉬웠다” 日외교관 추정 편지 발견

김채현 기자
김채현 기자
입력 2021-11-16 14:02
업데이트 2021-11-16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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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명성황후 추모제 모습. 연합뉴스
2006년 명성황후 추모제 모습. 연합뉴스
을미사변 실행그룹 소속 외교관
친구에게 발송 추정
“고물시장에서 발견
재일학자 김문자 판독”


을미사변(乙未事變) ‘실행 그룹’ 중 한 명인 일본 외교관이 명성황후(明成皇后·1851∼1895) 시해 다음 날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서신이 발견됐다.

16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을미사변 당시 조선에 영사관보로 머물던 호리구치 구마이치가 발송한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 8통이 최근 새로 발견됐다.

호리구치는 당시 외교관·경찰·민간인 등으로 구성된 을미사변 실행그룹의 일원이다.

이번에 새로 발견된 호리구치의 편지는 1894년 11월 17일부터 을미사변 이후인 1895년 10월 17일까지 총 8차례에 걸쳐 발송됐다.

받는 사람은 일본 니가타현 나카도리무라(지금의 나가오카시)의 한학자이자, 호리구치의 친구 다케이시 사다마쓰(武石貞松)다.

편지 내용 “조선 왕비 시해, 생각보다 간단해 매우 놀랐다”
편지는 1894년 11월 17일부터 사건 직후인 1895년 10월 18일까지 쓴 것으로 돼 있다.

모두 8통의 편지 중 명성황후 시해 다음 날인 1895년 10월 9일 자 편지에는 사건 현장에서 자신이 했던 행동이 상세하게 기술됐다.

그는 “진입은 내가 담당하는 임무였다. 담을 넘어 (중략) 간신히 오쿠고텐(귀족 집의 안쪽에 있는 건물, 침소)에 이르러 왕비를 시해했다”고 밝혔다.

또 “생각보다 간단해 오히려 매우 놀랐다”고 소감까지 적었다.

일본 근대사에 정통한 나카쓰카 아키라 나라여대 명예교수는 “일본이 한반도에서 무슨 일을 벌였는지, 사건 후 120여년이 지나 당사자가 쓴 1차 자료가 발견된 건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을미사변에 가담한 일본 외교관이 사건 직후 친구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가 새로 발견됐다고 아사히신문이 16일 보도했다. 아사히신문 홈페이지 캡처
을미사변에 가담한 일본 외교관이 사건 직후 친구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가 새로 발견됐다고 아사히신문이 16일 보도했다. 아사히신문 홈페이지 캡처
“현역 외교관이 부임지 왕비 살해 관여했다고 알리는 내용, 새삼 놀랐다“
해당 편지는 일본 나고야시에 사는 미국계 일본인 스티브 하세가와(77)가 골동품 시장에서 발견했고, ‘조선 왕비 살해와 일본인’이라는 저서를 쓴 재일 사학자 김문자씨가 판독했다.

김씨는 “사건의 세부(내용)이나 가족에 관한 기술 등을 보았을 때 본인의 진필이 틀림없다”며 “현역 외교관이 부임지 왕비 살해에 직접 관여했다고 알리는 내용에 새삼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아직 불분명한 부분이 많은 사건 세부 사항을 밝히는 열쇠가 될 가치가 높은 자료”라고 평가했다.

한편 을미사변은 1895년 10월 8일 일본 육군 출신 미우라 고로 당시 공사의 주도 아래 군인, 외교관, 민간인 등이 경복궁을 기습해 명성황후를 시해한 사건이다.

당시 실행그룹에 가담한 일본인들은 일본 재판에 회부됐지만,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처벌은 받지 않았다. 호리구치 역시 1년 정직 처분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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