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신춘문예 시 당선작] 그림자 숲과 검은호수

[2020 신춘문예 시 당선작] 그림자 숲과 검은호수

입력 2020-01-01 16:30
업데이트 2020-01-02 01:01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이원석

모든 것은 덤불 속에 감춰져 있지

거기까지 가는 길이 어둡고 어렵고 어리고

나뭇가지에 헝클어진 머리칼에는 마른 잎들이 견디기 힘든

날들이 따라붙었지 매달리고 매만지고 메말라

찬 공기는 조금씩 뒤섞였어

침상에서 내려 딛은 발은 문 앞까지 낡은 마루가 삐걱이는

소리를 누르고 길고 고른 숨소리들

사이로 천천히 밀어내는 호숫가의 배

젖은 흙 다섯 발가락들 사이로 닿는 촉각 촉각 누르는

건반과 긴바늘 입술 위의 손가락

우거진 뿔이 덤불 속에 갇혀

머리를 숙이고 있지 포기하지 못한 자랑들이 엉켜 있는

낮은 덤불에 얼굴을 묻고 몸을 떨지 다물지 못하는 입으로

숨을 뱉으며 뒷걸음질 끝에 꿇은 무릎과 마른 잎 위의 몸뚱이

내가 들어 올리고 싶은 뿔은 덤불 속에 잠겨 있어

달리는 덤불을 보여 줄게

춤추는 작은 숲을

바닥을 움켜쥔 모든 뿌리와 함께

흰옷은 흙투성이

물은 차고 어두워 소스라치는 살갗

걸어들어오는 고요와 잠긴 청각이 듣는 물소리

물속을 만지면 물이 몸을 바꾸고 뒤집는 모양은

얼굴과 얼굴이 흐르고 잠기는 기억

길게 줄어드는 음이 끊기지 않는

몸에 선을 긋고 지나가지 손도 발도 없이

물의 틈을 찾아 결대로 몸을 틀며 가라앉는 숨

접촉경계혼란

피아노의 가장 낮은 건반을 무한히 두드리는

바닥

놓지 마 놓지 마

춤을 추는 팔과 파란

뒤집힌 호수 바닥 위에 검은 숲

그림자 속 덤불과 부러진 나뭇가지 사이로

고개를 젓는 우거진 뿔과 큰 눈망울

진저리치며 흩날리는 입과 잎과 입김

호수 위엔

잔물결조차 일지 않는 검은 물 그리고

어두운 그림자 숲엔 부러진 뿔과 나뭇가지

몸뚱이 위로 끝없이 떨어지는 마른 잎사귀
2020-01-02 43면
많이 본 뉴스
최저임금 차등 적용, 당신의 생각은?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심의가 5월 21일 시작된 가운데 경영계와 노동계의 공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최대 화두는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입니다. 경영계는 일부 업종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요구한 반면, 노동계는 차별을 조장하는 행위라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찬성
반대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