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 이항복의 후손, 400년간 지켜온 문화재 기증

백사 이항복의 후손, 400년간 지켜온 문화재 기증

김기중 기자
김기중 기자
입력 2019-11-22 00:40
업데이트 2019-11-22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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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급 가치 1604년 ‘호성공신 교서’…손자 위해 직접 쓴 천자문 등 유물 17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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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 이항복 후손이 400년 동안 대를 이어 보관해 오다 20일 국가에 기증한 백사의 초상화 호성공신상 후모본(왼쪽)과 호성공신 교서. 연합뉴스
백사 이항복 후손이 400년 동안 대를 이어 보관해 오다 20일 국가에 기증한 백사의 초상화 호성공신상 후모본(왼쪽)과 호성공신 교서.
연합뉴스
국립중앙박물관은 오성부원군 백사 이항복(1556∼1618) 15대 종손인 이근형씨에게서 종가가 400년간 간직한 문화재 17점을 기증받았다고 21일 밝혔다.

이항복 종가가 전달한 유물 중 백사 관련 자료는 모두 6점이다. 특히 백사가 1604년 받은 ‘호성공신 교서’는 보물급 가치가 있다고 중앙박물관은 강조했다. 교서는 신하가 공을 세웠을 때 왕이 주는 이름과 업적, 특권, 명단을 적은 문서다. 호성공신 교서는 임진왜란 때 선조를 모시고 의주까지 호종하는 데에 공을 세운 신하 86명에게 등급을 나눠 하사했다. 이 중 1등 공신은 이항복과 정곤수 두 명뿐이며, 현존 호성공신 1등 교서로 유일하다. 가로 271㎝, 세로 37㎝ 크기로, 명필로 알려진 한호가 글씨를 썼다.

이항복 후손들이 기증한 초상화는 모두 2점이다. 이항복이 호성공신과 위성공신이 됐을 때 받은 초상화가 낡자 18세기에 베껴 그린 후모본으로 보인다. 중앙박물관 측은 “서울대 박물관에 있는 ‘이항복 초상화 초본’과 얼굴 표현이 유사하다. 서울대 작품은 이항복이 57세 때인 1613년 초상화 초본(밑그림)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항복이 손자를 위해 직접 쓴 천자문은 손 글씨 천자문 가운데 가장 이르다. 정자체로 쓴 뒤 “정미년(1607) 4월 손자 시중에게 써 준다. 오십 먹은 노인이 땀을 닦고 고통을 참으며 쓴 것이니 함부로 다뤄서 이 노인의 뜻을 저버리지 말지어다”라고 당부를 남겼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2019-11-22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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