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찾아 나선 이라크 참전 군인 동유럽에서 차가운 시선을 만나다
제목만 보면 아파트 주민 간에 벌어지는 에피소드나 아파트에 사는 현대인의 고독 따위를 다룬 책이라고 상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미국 작가 그레그 백스터의 첫 소설 ‘아파트’(The Apartment·시스터즈)는 아파트와는 관련이 없는 책이다. 언젠가 소설가 장정일은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읽는 도중 수시로 제목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가 이 책을 보면 난감해할 것 같다. 책의 제목은 배신의 시작일 뿐 백스터는 책장 고비고비마다 독자들의 선입견을 배신하느라 바쁘다.

책의 첫 페이지부터 이렇게 심상치 않다. 주인공인 ‘나’는 이라크 전쟁에 두번 참전했다. 처음엔 해군으로, 두 번째는 군사 기밀 관련 민간업자 신분으로 이라크에 갔다. 이때 많은 돈을 번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뜬금없이 동유럽의 한 도시(저자는 도시 이름도 알려주지 않는다)로의 이주를 결심한다. 일단 호텔에 묵은 주인공은 어느 겨울날 자신이 거주할 아파트를 구하러 나선다. 그때 그를 돕는 사람이 현지의 젊은 여성 사스키아다. 둘은 며칠 전 박물관에서 우연히 만났다. 사스키아는 “지난 사흘간 내리 파티에 가서 피곤해요. 그래서 약을 많이 먹었어요”라고 말한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전쟁의 참화에 따른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을 앓고 있는 남자가 자신만큼 아픈 과거를 가진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라고 짐작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선입견을 배신한다. 주인공은 전쟁 얘기를 많이 하지 않는다. 그저 “나는 죽음을 배속시키는 일을 했다”고 담담하게 말할 뿐이다.
책은 아파트를 구하러 나선 그날 하루의 얘기만을 다뤘다. 도시의 건물 풍경과 무슨 물건을 쇼핑했는지 등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부분 채워진다. 그리고 마침내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나온다. “그녀(사스키아)가 그(그녀의 남자 친구)를 내게 소개한다. 야노스라는 이름의 그가 묻는다. ‘미국인이에요?’ ‘예.’ ‘미국 어디?’ ‘델라웨어.’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전쟁으로 힘 자랑을 하는 미국을 경멸하는 외국의 시각을 저자는 이런 식으로 은근하게 드러낸다. 독자들이 이 대목에 집중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저자는 제목과 대부분의 에피소드를 무의미하게 설정하려 애쓴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왜 이 책을 선택했는지 정확히 모르겠다”는 독자가 있다면 어쩔 수 없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2013-12-2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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