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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족·방족… ‘전족 단죄’ 담론 깨부수다

천족·방족… ‘전족 단죄’ 담론 깨부수다

김기중 기자
김기중 기자
입력 2022-10-13 17:30
업데이트 2022-10-14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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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폭력
도러시 고 지음/최수경 옮김/글항아리/560쪽/3만원

억압·인권 무시 등 반전족 탈피
논쟁 아닌 젠더의 시각에 충실
1000년 관습 정교하게 꿰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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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초 기녀들이 당시 유행하던 디자인의 옷을 입고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앉아 있는 여성은 서양식 구두인 메리제인 스타일의 전족을 신었다. 글항아리 제공
1900년대 초 기녀들이 당시 유행하던 디자인의 옷을 입고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앉아 있는 여성은 서양식 구두인 메리제인 스타일의 전족을 신었다. 글항아리 제공
12세기부터 20세기까지 무려 1000년 가까이 이어진 중국의 ‘전족’(纏足)은 여성에게 가한 야만 그 자체였다. 여성의 발을 천으로 꽁꽁 동여매어 강제로 성장을 멈추게 하는 이 기이한 풍습에 대해 많은 연구자가 책과 논문을 수없이 쏟아냈다. 누군가는 성적 욕망으로 보고, 혹자는 여성을 집안에 잡아두기 위한 방법으로 풀었다. 명청시대 연구에서 저명한 학자 도러시 고는 전족의 기원과 이를 둘러싼 사회를 하나하나 분석하고, 특히 여성에 대한 억압, 전횡, 인권의 관점에서만 다룬 기존 연구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했다. 기존 연구대로라면 여성은 폭력적인 남성과 사회에 억압돼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즉 주체성 없는 존재에 그치고 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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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우선 근대에 나오기 시작한 반전족 담론들을 분석하고, 이런 운동이 전족 여성을 향한 혐오를 강조한 점에 주목했다. 반전족 담론은 서양 선교사들이 1880년대부터 주장한 자연스럽게 타고난 그대로의 발을 의미하는 ‘천족’(天足)에서 출발했다. 이어 1900년대에는 중국 지식인 중심으로 전족을 풀자는 의미의 ‘방족’(放足) 운동이 번진다. 서양 열강에 굴복하고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된 중국으로선 우스꽝스런 전족이 너무나도 창피했을 법하다. 그러나 천족이나 방족은 전족 여성의 발 사진을 활용해 모욕을 주고, 관리들이 몽둥이를 들고 나서서 강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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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서생 왕정보와 신발에 얽힌 사연을 묘사한 희곡집 ‘왕정보가 꽃신 빌려 저당잡히다’ 속 그림. 신발은 성관계를 암시하는 소재로 활용됐다. 글항아리 제공
가난한 서생 왕정보와 신발에 얽힌 사연을 묘사한 희곡집 ‘왕정보가 꽃신 빌려 저당잡히다’ 속 그림. 신발은 성관계를 암시하는 소재로 활용됐다. 글항아리 제공
다른 한편으로는 전족의 기원과 사회적 유행에 대한 사료를 통해 전족의 발생을 뒤쫓는다. 고전 시, 필기, 민가, 근대의 신문과 잡지, 정부 문서, 서양인의 보고서 및 회고록까지 섭렵하며 전족의 역사를 폭넓게 파헤쳤다. 12세기 문학에서나 간혹 등장하던 변태적인 묘사가 현실로 차츰 옮겨 오고, 보편적인 관습으로 자리하는 과정을 밝혀냈다.

남성의 비뚤어진 욕망으로 탄생한 풍속이긴 했으나, 여성에게는 전족이 자아의 표현이었던 부분에도 주목했다. 엄혹한 가부장제의 강요 아래 피눈물을 흘리며 발을 싸맸던 가련한 여성의 이미지를 걷어낸다. 여성 역시 전족 풍속의 능동적인 참여자였다는 의미다. 기존 진보 사관 혹은 페미니즘 시선에서 보면 기절할 이야기지만, 실제로 당시 중국의 전족 여성은 작은 발을 적극적으로 가꾸며 하나의 패션으로 인식하거나 성공의 수단으로도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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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푸젠지역 침례회가 전족을 비방하는 교재로 사용했던 나무 소재의 전족 발 모형. 글항아리 제공
중국 푸젠지역 침례회가 전족을 비방하는 교재로 사용했던 나무 소재의 전족 발 모형. 글항아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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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북방 스타일의 전족용 신발 그림. 글항아리 제공
1920년대 북방 스타일의 전족용 신발 그림. 글항아리 제공
여기에 파묻힌 주인공인 전족 여성들의 목소리도 되새긴다. 근대 반전족 운동 기간에 나이 많은 여성이 느낀 굴욕감, 전족을 해야 하는 여성의 초조함 등 여성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갑작스런 가치관의 변화, 여기에서 오는 갈등, 그럼에도 고통과 물심양면의 보상이 뒤따랐다. 중국 여성들은 복잡한 속내로 자신의 신체를 사회의 욕망에 맞췄다.

전족이라는 악습을 만들어 낸 원동력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과정 자체가 특히 한국사회에 가득한 혐오 담론을 풀어내는 데에도 유용할 법하다. 페미니스트 일부가 남성을 적대 세력으로 규정하고, 젊은 세대 일부가 기성세대를 구악으로 몰아치는 세상이다. 정파가 다르다고 무조건 혐오하고 욕하며, 일부 국가를 비하하고 한국이 최고라는 식의 분위기도 넘쳐 난다. 편협한 이분법 틀 속에서 자라는 혐오의 소용돌이는 추악할 따름이다. 하나의 풍속을 1000년에 걸쳐 각종 사료로 분석해 내면서 균형 감각을 잃지 않고 아주 정교하게 깎아 낸 저자의 역량은, 그런 점에서 감탄스럽기만 하다.

김기중 기자
2022-10-1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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