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가 남자라니”… 정상 가족이란 뭘까

“며느리가 남자라니”… 정상 가족이란 뭘까

손원천 기자
손원천 기자
입력 2023-08-04 01:02
업데이트 2023-08-04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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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각본/김지혜 지음/창비/248쪽/1만 7000원

태어나면서 성별 따른 역할 기대
남자 며느리처럼 균열이 생길 때
성별 따라 구조화된 가족체계 인지

결혼을 출산의 필수라 여기는 등
규정된 가족 구성은 차별투성이
삶 규율하고 사회적 불평등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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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 제24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동성 부부 김규진(왼쪽부터), 김세연씨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관계자인 킴·백팩 커플(활동명)이 동성 부부 결혼식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로 일상의 차별과 혐오를 분석한 김지혜 강릉원주대 교수는 새 책 ‘가족각본’에서 남녀의 결합을 정상으로 규정한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차별과 불평등을 짚어 본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제공
지난달 1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 제24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동성 부부 김규진(왼쪽부터), 김세연씨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관계자인 킴·백팩 커플(활동명)이 동성 부부 결혼식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로 일상의 차별과 혐오를 분석한 김지혜 강릉원주대 교수는 새 책 ‘가족각본’에서 남녀의 결합을 정상으로 규정한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차별과 불평등을 짚어 본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제공
“며느리가 남자라니!” 2007년 동성 커플이 등장하는 TV 드라마가 방송되자 이를 반대하는 측에서 일간지 1면에 게재한 광고의 구호다. 이 강렬한 문장은 10여년을 살아남아 현재도 퀴어 문화 반대 집회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히트작’이 됐다. 새 책 ‘가족각본’은 이 강력한 문장을 곱씹는 것에서 출발한다. 며느리가 뭐길래 남자는 안 되는 걸까. 동성결혼 합법화 반대야 다른 나라도 비슷하지만 ‘며느리’가 이토록 핵심적인 반대 이유로 등장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저자는 하필 ‘며느리’를 내세우며 등장한 이 구호에서 한국의 가족은 견고한 각본 같다는 생각을 떠올린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성별에 따른 역할을 기대받고 어른이 되면서 어머니와 아버지, 며느리와 사위 등의 역할을 떠맡는다. 가족각본은 평소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다 ‘남자 며느리’처럼 각본에 균열이 일어날 때 그간 당연시해 온 ‘가족’이 성별에 따라 세밀하게 구조화된 체제라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책은 우리 사회에서 정상이라고 규정해 놓은 가족 구성이 실상 차별투성이란 걸 지적한다. 다양한 연구와 판례, 역사를 오가며 너무나 익숙한 ‘가족’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작동 기제를 낱낱이 해부한다. 우리는 왜 결혼을 출산의 필수 조건이라 여기며, 성별이 같은 사람끼리는 왜 가족을 이룰 수 없고, 부와 모가 양육하지 않는 아이는 왜 불행하다고 생각할까. 책이 던지는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가족이란 게 한국인의 삶을 각본처럼 세세하게 규율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하며, 차별을 재생산하는 제도이자 구조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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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세계 각국의 동성애 수용도에 관한 대목이 나온다.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를 1점, ‘언제나 정당화될 수 있다’를 10점으로 하고 주기적으로 수용도를 측정하는데 한국은 3.2점(2017~2022년)이 나왔다고 한다. 2001년 3점에서 겨우 0.2점 오른 수치다. 반면 네덜란드 9점, 덴마크 8.8점 등 북유럽 국가들은 높은 수치를 기록했고, 프랑스(6.8점), 미국(6.2점), 일본(6.7점) 등은 다소 낮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국 평균은 6점이었고 한국은 겨우 30위에 턱걸이했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 “며느리가 남자라니” 등의 구호가 등장했을 것이라 본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동성애를 정당화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성향을 가졌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1점일까, 3.2점일까. 아니면 6점 정도 줘도 되는 걸까. 설문 자체가 모호하다는 뜻이다. 실생활에서는 저렇게 무 자르듯 자신의 관점을 수치로 자를 수 없다.

동성애가 정당하냐, 부당하냐의 척도로 나누는 것도 어색하다. 동성애는 호불호의 문제에 가깝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닌 듯싶어서다. 극단적으로 치우친 사람들은 옳고 그름의 문제로 파악할 수도 있겠지만, 요즘 한국 사회가 그런가. 그보다는 개인의 문제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퍽 많을 거라 판단된다. 극단과 극단을 비교해 선명성을 드러내기보다는 출발점을 가족의 해체 등 현실적인 토대로 잡는 게 어떨까 싶다.

손원천 선임기자
2023-08-04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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