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신작 ‘트램을 타고’로 돌아온 시인 김이강
트램을 타고/김이강 지음/문학과지성사/116쪽/1만 2000원
내년에야 다시 달릴 트램 끌어와사랑마저 포기해야 하는 청년 등
이상한 서울의 이상한 사람 풀어내
“현실의 삶 앞지르는 가상의 언어로
과감하게 지른 첫 문장 수습하는 중”
29일 서울 합정동 문학과지성사 사옥에서 만난 김이강 시인은 “서울 시내를 혼자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너무 정처 없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일부러 시계를 한 번씩 보기도 한다”며 웃었다.
김이강 시인 제공
김이강 시인 제공
새 시집 ‘트램을 타고’로 돌아온 그를 29일 서울 합정동 문학과지성사 사옥에서 만났다. ‘타이피스트’ 이후 6년 만이다. 제목이 좀 이상하다. 왜 ‘트램’일까. 서울을 걸으면서 시를 구상한다지 않았나. 1968년 이후로 서울에서 자취를 감춘 트램은 내년에야 다시 개통된다. 시집은 그러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이야기인가.
“참 이상한 교통수단이다. 도시 한가운데에 사람 바로 옆을 달리는 열차라니.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다. 언젠가 외국에서 트램을 타고 종점엘 가본 적이 있다. 유적과 관광지가 즐비한 도심과는 시간이 완전히 다르게 흐르는 공간이었다. 그런 이상한 걸 타고 다니는, 이상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클레르, 평희, 바흐 이덴…. 시집을 읽으면 인물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톡톡 걸려든다. 그중에서도 91쪽 ‘타일’에 등장하는 인물 폴에게는 재밌는 사연이 있다. ‘푸른 눈의 폴은 푸른 셔츠를 입었다.’ 시인은 그저 파열음(ㅍ)과 유음(ㄹ)의 조합만을 상상했는데 어느 날 인터넷에서 우연히 영화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이 푸른 셔츠를 입고 있는 사진을 보게 됐다. 정말 푸른 눈의 폴이 푸른 셔츠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김이강은 “시 안에서 누군가를 그리는 것은 제게 굉장히 유희적인 작업”이라고 말했다.
65쪽 ‘아키타’에서 화자는 갑자기 ‘나는 아무래도 결혼은 못 할 것 같아’라고 선언한다. 화자는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라고만 한다. 이 말에서 연애와 사랑, 결혼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안으로만 숨어드는 요즘 청년들의 슬픈 자화상도 보인다.
“‘타이피스트’(16쪽)는 불러 준 걸 받아 적는 수동적인 존재다. 창작은 그것과 거리가 먼 대단히 능동적인 행위라는데, 글쎄…. 무언가를 쓰려면 항상 주변에 있는 걸 받아들여야 하니까. 시를 쓰는 나 역시 타이피스트 아닐까.”
문학평론가 조대한은 시 해설에서 김이강이 한국어 문법엔 없는 독특한 ‘전미래 시제’를 사용하고 있다고 짚었다. 프랑스어 문법 용어로 미래 어느 시점에 완료될 이야기를 앞당겨 서술하는 시제다. ‘크리스마스에 첫눈이 내리면 당신에게 고백하겠다’는 문장이 좋은 예가 되겠다. 내년쯤에야 서울을 달릴 트램을 굳이 제목에 넣은 것도 이런 맥락일까. 미래를 그저 기다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끌어오는 그의 시집 마지막에 수록된 시가 ‘새로운 서막’인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시는 달라야 하는 것인데, 남들과 다른 글을 쓰는 걸 두려워했던 적이 있다. 이번 시집에서는 그런 의심에서 조금은 벗어난 것 같다. 언어는 가상이고 삶은 현실인데, 가상이 현실을 앞질러 규정하기도 하잖는가. 글쓰기와 시 창작 역시 과감하게 지른 첫 문장을 수습해 나가는 과정이다.”
2024-03-0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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