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눈과 영혼을 맑게 씻어주는 감국(甘菊)의 향기

마음의 눈과 영혼을 맑게 씻어주는 감국(甘菊)의 향기

입력 2010-12-19 00:00
업데이트 2010-12-19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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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 이야기] 감국(甘菊)

가을은 국화의 계절이다. 화원에서 혹은 가정에서 가꾸는 형형색색의 국화도 아름답고 향기로우며 기품이 없지 않으나 저 산과 들에 피는 국화는 또다른 느낌으로 가을을 연출한다. 들국화다. 흔히들 들국화라 할 때 어느 한 식물 종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들국화라는 꽃은 없다. 구절초, 쑥부쟁이, 감국, 산국 들을 일러 들국화라 통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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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구절초와 쑥부쟁이는 소개하였기 때문에 이번에는 산국과 감국을 만나러 간다. 멀리 갈 것은 없다. 늘 둑의 풀을 제거하고 작물을 가꾸어야 하는 경작지만 벗어나면 들과 산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즈음에는 푸른 잎들은 어느 새 시들어 누렇게 변하고 억새가 여물어 그 하얀 씨앗이 꽃처럼 활짝 피어날 때다. 갈대는 갈대대로 그 연갈색 손을 흔들어 가을의 우수를 자극한다. 이제 꽃철은 갔다. 그러나 이 황량한 풍경에 섞여 아직도 푸른 잎을 유지하고 유화 물감을 점점이 발라놓은 듯 피는 꽃들이 있다. 산국이다. 감국도 핀다.

억새랑 갈대랑 그리고 산국이랑 감국이랑 함께 섞어 한 아름 꽃다발을 엮어 사랑하는 이에게 안기는 상상을 해도 좋겠다. 물론 상상만으로 말이다.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가 귀하지 않으니 이 풍경 어디를 눌러도 작품이겠다. 여기에 만약 감국이나 산국 혹은 구절초 꽃이 없다고 한다면 황량함은 말 그대로 거칠고 생명감이 사라진, 어쩌면 을씨년스럽고 삭막한 풍경에 가깝지 않을까? 가을은 이 들국화들로 하여 완성된다. 황량한 아름다움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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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의 꽃이다. 손톱 크기보다 작거나 크다. 노란 색깔과 함께 달면서도 맑은 국화 특유의 향기가 멀리까지 마중을 나온다. 가까이 다가가보면 벌과 꽃등에가 먼저 이들을 찾아와 부지런히 꿀을 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몇 송이 꺾고자 해도 이 벌에 쏘일까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올해는 유난히 벌이 없다. 이곳 지리산 근처에는 토종벌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거의 전멸하다시피 사라졌다. 눈에 띌 정도로 토종벌 보기가 힘들어졌다. 농가에 미치는 영향도 매우 크다 한다. 유실수 꽃가루를 옮겨주는 역할을 해왔는데 이들이 사라지니 큰 타격이 될밖에. 기후 환경변화의 심각성은 매우 다양한 측면에서 우리 생활과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어제는 학생 70여 명과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가 무리 지어 피어 있는 산국 꽃언덕을 지나며 그 주위 가득 찬 산국의 향기를 아이들에게 맡게 했다. 그런데 인솔자인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더니 대개는 그냥 지나쳐 간다. 이 날것의 생생한 국화 향기를 그냥 지나쳐 가다니! 뇌 속까지 쇄락한 기운으로 온갖 잡념과 번뇌를 씻어가는 듯한 청량한 이 향기를 그냥 지나쳐 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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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향은 신경 안정 작용이 있다 하여 꽃을 말려 베갯속에 넣거나 차로 마시거나 한다. 취맹(Anosmia)이라는 말이 있다. 그 의학적인 혹은 과학적인 의미는 차치하고 현대적이고 도회적 감각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는 특히 이 야생 세계에 대해 취맹의 현상이 있을 법한 얘기다. 인공 또는 인공자연에 갇혀 사는 아이들에게 자연의 향기가 오히려 더 낯설거나 혐오스럽거나 혹은 무감각으로 다가올 수 있을 법하다. 안타까운 경험이었다.

가을은 빛깔도 빛깔이지만 향기로 느껴야 한다. 가을 숲에 들면 낙엽도 향기를 뿜는다. 작은 열매들도 그런데 들국화는 오죽하랴. 구절초나 산국의 향기를 깊숙이 숨을 들이쉬며 맡다보면 물리적인 향기뿐만 아니라 흔히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 하는 이 국화의 품격과 정신까지 느껴진다. 온갖 식물들이 다 시들어 가도 이 늦은 가을 택하여 찬 서리를 마다 않고 피어나되 고고한 향기를 빚어 내뿜는 식물의 영혼 말이다. 세파에 시달릴수록 악취를 내는, 안온함만을 추구하고 돈과 권력과 명예를 좇아 영혼을 돌보지 않는 인간에게 한마디 가르치는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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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감국과 산국의 차이를 나누지 않고 함께 말했으나 실은 감국과 산국은 거의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찬찬히 살펴야 그 구별이 가능하다. 그냥 아름답다, 향기롭다 정도만 느끼고자 한다면 굳이 구별할 필요가 없겠으나 실용적 목적으로 이 야생초를 만나고자 한다면 구별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차이에서 비롯된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 이들의 특성을 알고 대하는 것도 이 야생초에 대한 한 예의일 수도 있겠다.

산국은 꽃이 작고 꽃판에 비하여 꽃판을 둘러싼 설상화(혀모양) 꽃잎이 짧다. 잎겨드랑이에서 가지가 나와 그 가지마다 꽃이 피기 때문에 산국은 꽃이 무더기를 이루어 핀다. 주로 햇볕이 좋은 곳에서 곧추 서서 피어난다. 그 반면 감국은 가지가 많지 않고 줄기 아랫부분에서 가지가 몇 개 나뉘어 자란다. 반음지에서 비스듬히 누워 자란다. 꽃이 산국에 비하여 크고 꽃판에 비하여 꽃잎이 길다. 감국은 이름 그대로 달다. 쓴 맛이 강한 산국과 달리 국화차 재료로 더욱 많이 쓰이는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야생 국화차를 요즘 많이 찾는다고 한다. 산국, 감국 국화차로 이 둘을 다 사용한다. 집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소금을 푼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내어 물기를 빼내고 빠른 시간에 이를 건조시킨다. 그렇지 않으면 건조과정에서 곰팡이가 필 수 있다. 스프레이로 소주를 살짝 뿌려주며 말리면 그 향기가 달아나지 않는다고 한다. 국화차는 특히 감기에 좋으며 소염작용을 하고 결핵균을 억제하는 성분이 들어있다고도 한다. 열을 내려주고 눈을 맑게 한단다.

집에서 만든다고 야생 산국, 감국을 따라고는 권유하고 싶지 않다. 전문가들이 잘 만들어놓은 차를 그리 비싸지 않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화차를 만들기 위해 요즘은 감국을 많이 재배한다. 대신, 혹 그럴 수 있다면 산국이나 감국 마른 꽃대를 한 무더기 묶어 실내에 걸어두면 가을이 다 가도록 겨울이 깊어도 은은한 그 향기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글_ 복효근 남원 금지중학교 교사

사진_ 조기수 남원생태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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