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겨울나기 채비 山寺에 가다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겨울나기 채비 山寺에 가다

입력 2012-11-16 00:00
업데이트 2012-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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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 쑤고 배추걷이… 소욕지족의 삶으로 무명을 밝힌다

가을인가 싶더니 어느새 차가운 바람이 겨울을 재촉하고 있다. 계절은 자연의 순리와 더불어 세월의 무상(無常)함을 정직하게 알려준다. 단풍이 낙엽으로 변해 뒹구는 이즈음, 사람들은 저마다의 월동 준비와 함께 한 해의 마무리를 시작한다. 남녘의 산사(山寺)도 겨울 채비에 분주하다. 지난 12일 경남 양산의 영축산기슭에 자리 잡은 천년고찰 통도사(通度寺). 경내로 향하는 길 숲에는 가을 단풍이 머물다 간 흔적들이 띄엄띄엄 남아 있다. 대웅전 추녀에 매달린 풍경이 청아한 소리로 객의 발길을 맞이한다.

사찰에 진동하는 메주콩 냄새가 구수하다. 절집 겨우살이 준비는 여염집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첫눈이 내리는 소설(小雪) 즈음에 메주를 쑤던 옛 전통 그대로다. 새벽부터 팔을 걷어붙인 스님과 신도들의 손길이 해질 무렵까지 쉴 틈이 없다. 사찰 원주(院主) 마벽 스님은 “메주 맛에 따라 그해 반찬의 밑천인 장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지극 정성을 기울인다.”며 “한 해 먹을거리는 절반쯤 준비된 셈”이라며 흐뭇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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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을 앞두고 배추걷이 울력에 나선 비구니 스님들이 가으내 키운 배추를 뽑아 나르고 있다. 김장은 산사에서 겨울을 준비하면서 가장 공을 들이는 대표적인 ‘울력품목’이다. (경북 청도 운문사)
김장을 앞두고 배추걷이 울력에 나선 비구니 스님들이 가으내 키운 배추를 뽑아 나르고 있다. 김장은 산사에서 겨울을 준비하면서 가장 공을 들이는 대표적인 ‘울력품목’이다. (경북 청도 운문사)
경남 양산 통도사 서운암의 승려들이 겨울철 난방용 땔감인 장작을 지게에 한 짐씩 지고 사찰을 향해 산을 오르고 있다.
경남 양산 통도사 서운암의 승려들이 겨울철 난방용 땔감인 장작을 지게에 한 짐씩 지고 사찰을 향해 산을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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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호박은 맛뿐만 아니라 부족한 비타민 A 공급원으로 겨울철 사찰의 영양 먹거리다(경남 양산 극락암).
늙은 호박은 맛뿐만 아니라 부족한 비타민 A 공급원으로 겨울철 사찰의 영양 먹거리다(경남 양산 극락암).
●아랫목 덥힐 땔감 쌓고 구들장·아궁이 점검

한쪽에서는 아랫목을 데울 땔감인 장작을 쌓아 올리고 한동안 비워뒀던 구들장, 아궁이 정비부터 전각의 문창호지를 다시 바르는 작업이 한창이다. 교무 광우 스님과 마주 앉아 마시며 나눈 차담(茶談). “겨울나기 절 살림은 소욕지족(少欲知足) 그 자체입니다.” 자연에서 얻은 최소한의 것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겨울나기 준비를 통해 또 다른 수행의 방편으로 삼는 선승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비구니 전문 교육 도량(道場)인 경북 청도의 운문사(雲門寺). 달빛 어스름한 새벽, 예불 시간을 알리는 범종(梵鐘) 소리가 경내를 휘감는다. 정성스레 아궁이에 불이 지펴지고, 스님들의 낭랑한 독경소리가 새벽의 찬바람을 가른다. 운문사 새벽 예불의 공명음에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씻어주는 청정한 울림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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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추위가 오기 전에 스님들이 문 틈새와 문창호지의 찢어진 곳을 미리 손보고 있다(경남 양산 통도사).
본격적인 추위가 오기 전에 스님들이 문 틈새와 문창호지의 찢어진 곳을 미리 손보고 있다(경남 양산 통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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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스님이 장작불을 지펴가며 한동안 비워뒀던 공양간 아궁이를 점검하고 있다(경남 양산 통도사).
행자스님이 장작불을 지펴가며 한동안 비워뒀던 공양간 아궁이를 점검하고 있다(경남 양산 통도사).
사찰 경내에 열린 감을 따서 말리면 훌륭한 간식거리가 된다(경남 양산 극락암).
사찰 경내에 열린 감을 따서 말리면 훌륭한 간식거리가 된다(경남 양산 극락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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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군 운문사 비구니 스님들이 감 말리기 작업을 하고 있다.
경북 청도군 운문사 비구니 스님들이 감 말리기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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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군 운문사 비구니 스님들이 겨우내 사용할 시레기를 말리고 있다.
경북 청도군 운문사 비구니 스님들이 겨우내 사용할 시레기를 말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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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군 운문사 비구니 스님들이 겨울철 김장에 사용 할 배추걷이 울력을 하고 있다.
경북 청도군 운문사 비구니 스님들이 겨울철 김장에 사용 할 배추걷이 울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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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양산 통도사 강원의 행자 스님들이 겨우내 연료로 쓰일 땔감인 장작을 쌓는 작업을 하고 있다.
경남 양산 통도사 강원의 행자 스님들이 겨우내 연료로 쓰일 땔감인 장작을 쌓는 작업을 하고 있다.


●공양간엔 시래기 저장… 돌배 말려 茶 만들어

동이 트면서 펼쳐지는 절집의 빼어난 기품에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아침 공양을 마친 스님들이 겨우내 먹을 배추걷이 울력에 나섰다. “울력은 승려들에게 있어 중요한 수행의 일부 입니다.” 막장갑을 끼고 괭이질을 하던 교무 은광스님의 설명이다. 구름처럼 힘을 모은다는 뜻에서 운력(雲力)이라고도 한다. 김장은 산사에서 겨울을 준비하는 데 가장 공을 들이는 대표적인 ‘울력품목’이다. 스님들은 따놓은 돌배를 말려 겨우내 마실 차를 만들고, 감 따는 울력에도 한창이다. 공양간에서 시래기를 매달고 있는 승가 대학 2학년 윤상 스님. “공부하랴. 작업하랴. 힘들지 않으냐.”는 우문(愚問)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현답(賢答)을 한다.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내는 것으로 여승들에게는 당연히 해야 하고 즐거운 일들이었다.

월동준비를 마친 산중(山中)은 이내 ‘겨울 공부철’인 동안거(冬安居)에 들어간다. 무명을 걷어내고 지혜를 얻기 위한 선방(禪房)의 정진(精進)만이 남을 것이다.

‘칼바람 피하려고 나무도 옷을 벗고, 번뇌를 벗으려고 동안거 서두르네.’

어느 시인의 시구(詩句)처럼 겨울은 어느새 산사 일주문 안으로 한걸음 성큼 들어서고 있었다.

글 사진 jongwon@seoul.co.kr

2012-11-16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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