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이 만난사람] 막걸리에 인문학 옷을 입히는 막걸리학교 허시명 교장

[김문이 만난사람] 막걸리에 인문학 옷을 입히는 막걸리학교 허시명 교장

입력 2013-08-21 00:00
수정 2013-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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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는 최고의 인간 접착제… 전통문화 재인식 차원 접근을”

술을 마시며 수업을 한다고? 그렇다. 대개 수업이라고 하면 엄격한 분위기가 연상되겠지만 술을 마셔 가며 토론을 벌이고 이론과 실기를 병행하는 파격이 벌어진다. 더러 취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걸 행동으로 나타내는 사람은 없다. 만약 술주정이라도 한다면 당장 퇴교를 당한다. 서울 종로구 사간동에 있는 막걸리학교에서는 술을 마시되 술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수업하는 곳이다. 전국에서 빚어지고 있는 다양한 막걸리를 맛보면서 맛의 차이와 근원을 가늠하고 느끼게 해 주는 학교이다. 생막걸리와 살균막걸리, 전통막걸리와 개량막걸리, 감미료 막걸리와 무감미료 막걸리 등과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다. 막걸리와 함께 살아왔던 날들, 그리고 살아갈 날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술을 빚었던 우리 민족의 애환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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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막걸리학교에서 만난 허시명 교장이 막걸리병 진열장 앞에서 막걸리와 인문학에 대해 얘기하며 “이제는 막걸리의 정체성을 제대로 찾아봐야 할 때”라고 웃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막걸리학교에서 만난 허시명 교장이 막걸리병 진열장 앞에서 막걸리와 인문학에 대해 얘기하며 “이제는 막걸리의 정체성을 제대로 찾아봐야 할 때”라고 웃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지난 15일 오전 막걸리학교에서 허시명(52) 교장을 만났다. 허 교장은 여행작가이자 술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술의 여행’, ‘막걸리 넌 누구냐’, ‘풍경 있는 우리술 기행’ 등 막걸리 관련 저술만 7권을 펴내 이 방면에서 유명인이 됐다. 특히 5년 전에는 막걸리학교를 설립, 우리의 전통 막걸리에 인문학의 옷을 입히는 일에 열정을 쏟고 있다. 매월 ‘힐링 술기행’ 또한 활발히 펼치고 있다.

막걸리학교 입구에는 ‘우리술 교육훈련기관’(농림수산식품부 선정)이라는 표지판이 걸려 있고 문을 열고 강의실 안으로 들어서자 ‘술의 인문학원’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한쪽 벽면에는 전국에서 생산되는 막걸리 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상표가 전부 다른 것들이어서 우리나라 막걸리 종류가 이렇게 많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허 교장에게 막걸리 종류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전국적으로 양조장이 850곳이 되고 이름을 달리한 막걸리는 2000여개 된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도시와 시골의 막걸리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시골 막걸리는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약간 무거운 농주가 많고 도시는 젊은 세대를 겨냥해 가볍고 경쾌한 막걸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에는 대표적으로 ‘청향막걸리’가 있는데 알코올 도수가 12%로 우리보다 2배가량 높다고 한다. 이어 막걸리에 대한 몇 가지 궁금증을 물었다. 먼저 알코올 도수는 왜 6도일까.

“현재 주세법상으로 탁주는 알코올 도수가 3% 이상이면 됩니다. 시중에 나오는 제품 가운데 알코올 도수가 16%인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6~8%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알코올 도수의 변화가 조금씩 있었지만 통상적으로 쌀과 누룩으로 술을 빚으면 알코올 도수가 14~16%로 생성됩니다. 맑은 청주는 떠내고 술지게미에 물을 부어 가며 거르면 알코올 도수가 절반 이하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게 바로 알코올 도수가 6~8%인 막걸리가 되는 것이지요.”
허시명 막걸리학교 교장
허시명 막걸리학교 교장


탁주와 막걸리는 어떻게 다를까. 한 가지 일화를 들려주면서 설명한다. 2009년 여름 막걸리 바람이 한창일 때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을 대표하는 양조장 사장들을 청와대로 불렀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이 “막걸리가 맞습니까, 탁주가 맞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막걸리가 맞다”는 의견이 나왔고 대통령은 “그럼 앞으로 막걸리라고 부르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허 교장은 “막걸리와 탁주는 어느 게 옳고 그른 게 아니고 똑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하고, 때로는 아주 다른 술을 지칭한다”고 말한다. 우선 탁주(濁酒)는 한자어이고 막걸리는 순우리말이라는 점이 다르다. 뜻 그대로 풀면 탁주는 탁한 술이고 막걸리는 막 걸러낸 술이라는 것이다. 그는 “막걸리의 ‘막’에는 ‘방금’이라는 뜻도 있고 ‘함부로’, ‘거칠게’라는 뜻도 있는데 대체로 후자의 의미로 쓰인다”면서 “막걸리라는 표현이 술 빚기의 마지막 단계인 여과의 특징을 형상화한 말이라면 탁주는 술의 맑고 흐린 정도를 보고 판단한 용어”라고 설명한다. 또한 동동주에 대해서는 “탁주와 약주, 소주처럼 법적인 자기 영역이 있는 것이 아니다. 동동주는 쌀알이 동동 뜬 상태의 청주(약주)를 의미한다. 술지게미도 거르지 않고 쌀알만 동동 뜬 상태의 동동주를 빚기 위해서는 거친 누룩을 하룻밤 물에 담가 두었다가 그 물을 사용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막걸리라는 말은 언제부터 나왔을까. 옛문헌에서 탁주나 막걸리의 유래를 정확히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전제한다. 다만 탁주와 관련된 오래된 문건을 뒤적여볼 수밖에 없는데 1123년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를 방문했던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고 한다. ‘고려 사람들은 술을 즐긴다. 그러나 서민들은 양온서에서 빚은 좋은 술을 얻기 어려워 맛이 박하고 빛깔이 진한 것을 마신다.’ 이 글로 보아 고려 서민들은 ‘탁한 술’을 마셨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허 교장은 말한다. 술이 없이는 시를 지을 수 없을 만큼 술을 좋아했던 이규보는 막걸리와 관련해 백주시(白酒詩)를 남겼으며 조선 초기 청백리의 대명사로 알려진 맹사성은 ‘강호사시사’에서 ‘강호에 봄이 드니 미친 흥이 절로 난다/탁료(濁?) 계변(溪邊)에 금린어(錦鱗魚) 안주 삼고~’라고 읊었다. 탁료는 막걸리이고 금린어는 맛잉어를 뜻한다. 대체로 20세기 이전에는 주로 요(醪), 앙(醠), 탁료, 탁주 등 한자로 표기돼 왔으며 지금까지 확인된 가장 오래된 막걸리의 한글 표기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춘향전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에 ‘콩나물 깍때기 목걸리 한 사발 나왔구나~’ 하는 대목에서 막걸리를 뜻하는 ‘목걸리’(전라도나 경상도 발성)를 엿볼 수 있다고 허 교장은 말한다.

화제를 바꿔 막걸리학교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막걸리는 최고의 인간 접착제입니다. 그것을 실감하는 곳이 막걸리학교이지요. 양조장을 운영하시는 분, 금융업계 종사자, 교직자, 음식업 관련 종사자,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으려는 퇴직 준비자 등 그동안 700여명이 저의 학교를 거쳐 갔지요. 재일동포, 재미동포, 한국계 독일인 등 해외에서도 소문을 듣고 찾아오고 있습니다. 술을 빚고 토론하는 인간적인 교류의 장입니다. 전국에서 공수해 온 5~6종의 막걸리를 시음하면서 맛과 인문학을 얘기하는 것이 막걸리 수업의 핵심이지요.”

술도 다니고, 사람도 다니는 학교이자 특별한 문화공간이라고 강조한다. 아울러 한국에서 가장 멋지게 술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공간이고 한국 술들이 어떤 문화의 옷을 입고 있는지, 또 어떤 문화의 옷을 입어야 하는지 함께 시음하고 가늠하는 공간이라고 거듭 역설한다. 월1회 막걸리 문화콘서트도 진행되는데 그림과 막걸리, 트로트와 막걸리, 군인과 막걸리, 대금연주와 막걸리 등 다양한 주제로 펼쳐진다.

요즘 막걸리의 인기가 주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동안 막걸리 수출 물량의 90% 가까이를 일본으로 수출했는데 최근 일본 내 한국 막걸리 소비가 줄어들어 수출물량 또한 감소하고 있다”면서 “단순한 생산 위주에서 벗어나 이제는 막걸리에 대한 인식과 문화의 확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막걸리 인기가 시들었다기보다는 지난 4년 동안 수출 확대 등 많은 국민적 관심을 가졌던 막걸리에 대한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단계라고 설명한다.

“그동안 막걸리를 통해 한국 전통문화를 재인식한 것이 아니라 유행상품 목록 하나가 추가된 느낌이 들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막걸리 업체끼리 저가 경쟁을 벌여 막걸리의 가치를 향상시키지 못한 것도 되짚어봐야 하고 제값 또는 더 좋은 가격으로 팔기 위해서는 한국 막걸리업체들 간의 수출 연대전략이 팔요합니다. 또한 김치와 ‘기무치’의 경쟁구도가 막걸리와 ‘마코리’ 사이에서 재현되지 않게 하려면 막걸리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일본 양조장들이 무감미료 막걸리를 만들어 내면서 감미료 막걸리의 약점을 지적하는 것 또한 경쟁의 시작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도 무감미료 막걸리가 국내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 만큼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어떤 게 좋은 막걸리인지 물었더니 “감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게 좋은 술이며 감미료가 들어가지 않아야 좋은 재료의 맛도 볼 수 있다”고 대답한다.

술은 생활의 일부, 그렇다면 어떻게 마시는 것이 좋을까. 다음은 그가 전국 방방곡곡 천리를 돌고 얻은 ‘주당천리 10계명’이다. 주는 대로 마시지 말고 골라 마시자, 주신을 섬겨라, 약주로 효도하라, 한국 와인의 족보를 찾아라, 감미료 술을 마시지 말라, 숙취를 무릅쓰고 기발한 술을 찾아라, 100일 동안 숙성시킨 백일주를 마셔라, 자기만의 주안상을 차려라, 술이 떡이 되지 말고 술이 덕이 되게 하라 등이다. 폭염이 한풀 꺾이고 선선한 바람이 기다려지는 계절에 한번쯤 음미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선임기자 km@seoul.co.kr

●허시명은

1961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에서 국문학, 중앙대 대학원에서 민속학을 전공했다. 일본주류총합연구소에서 청주 제조자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1989년부터 4년 동안 ‘샘이 깊은 물’ 기자로 근무했다. 이후 여행작가로 나서 전국을 돌며 전통주 기행을 했다. 문화부 전통가양주실태조사사업 책임연구원(2005년), 농림수산식품부 전통주 품평회 심사위원(2009~2012년), 사단법인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2009~2012년), 명지대학교 산업대학원 강사(2004~2010년), 삼성세리CEO와 옥답CEO ‘주유천하’ 동영상 강좌(2011~2013년) 등을 거쳤다. 현재 막걸리학교 교장으로 있으면서 여행작가와 술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막걸리학교는 우리술교육훈련기관(2012년, 농림수산식품부), 창조관광기업(2012년, 한국관광공사)으로 지정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술의 여행’, ‘막걸리 넌 누구냐’, ‘풍경 있는 우리술 기행’, ‘비주, 숨겨진 우리술을 찾아서’, ‘조선문인기행’, 일본어판 ‘막걸리의 정체’ 등이 있다.

2013-08-2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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