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아니면 알바… 학원 스포츠의 그늘

스타 아니면 알바… 학원 스포츠의 그늘

입력 2012-11-05 00:00
업데이트 2012-11-05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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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선발 낙오 땐 알바뿐

“역시 지명 포기하셨습니다. 이로써 2013년 여자프로농구(WKBL) 드래프트에서는 18명 중 12명이 선발됐습니다.”

정미(가명·18)의 농구 인생은 그렇게 끝났다.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WKBL 신인 선수 선발회에서 그는 6개 구단 모두로부터 부름을 받지 못했다. 감독이 무대에 오를 때마다 ‘혹시나’ 하던 기대는 ‘역시나’였다. 코트에서 부대끼던 친구들은 지명을 받고 하나둘 무대에 올랐다. 친구들이 프로 유니폼을 입고 꽃다발을 들고 사진도 찍었다. 그러기를 12차례, 모든 구단이 ‘지명 포기’를 선언했다. 이렇게 프로라는 취업문을 통과한 여자 선수는 5명 중 1명 정도다.

올해 고3으로 등록된 여자 농구 선수가 50여명. 안타깝게도 정미는 낙오된 80%가 돼 버렸다.

정미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표정관리가 안 돼 애꿎은 스마트폰만 부여잡았다. 그는 “뽑힐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어요. 프로에 간 친구들이 부럽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기업 취업은 재수나 삼수를 할 수 있지만 드래프트 시장에 재도전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학이나 실업팀에서 기량을 쌓은 뒤 다시 드래프트에 나선다 해도 어린 선수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져서다.

정미는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줄 알았으면 수학여행도 가고 야자(야간자율학습)도 하고 평범하게 지낼 걸 그랬어요. 이젠 뭐 하면서 살죠.”라고 반문했다.

남자 농구 선수였던 A(25)씨의 사정도 비슷하다. 대학을 졸업한 뒤 2010년 프로 지명을 받아 1~2군을 넘나들며 경기를 뛰었다. 그러나 한 시즌 후 재계약이 불발됐다. 신인들에게 밀려 엔트리가 없었다. “미안하다.”는 감독의 말이 끝이었다. 그날로 짐을 싸서 숙소를 나왔다. 농구말고는 관심을 안 가졌던 지난날이 원망스러웠고 오전 운동, 낮잠, 오후 운동으로 10년 넘게 맞춰진 생체리듬이 괘씸했다.

그는 현재 일자리를 못 구해서 홀서빙, 매장 관리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A씨는 “인생에서 제가 잘할 수 있는 건 농구뿐인데…. 언젠가 겪을 일이라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겪어 차라리 잘됐어요. 특급 선수가 아닌 이상 다 비슷하겠죠.”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농구뿐 아니라 대부분의 스포츠 현실이 이렇다. 학창 시절 운동에만 매진한 이들이 낙오하면 퇴로가 없다. 문제는 이런 냉혹한 현실이 소수가 아닌 다수의 일이라는 점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홍지만 새누리당 의원에 따르면 운동 선수들이 대학 졸업 후 관련 분야로 진출하는 비율이 47%로 나타났다.

2010년부터 올 7월까지 대학교에서 축구, 야구, 농구, 배구, 골프 등 5개 프로 종목과 역도, 수영, 펜싱, 사격, 배드민턴 등 5개 올림픽 종목의 선수 생활을 한 251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183명만이 프로, 실업, 상무 등에서 진로를 이어 갔다. 같은 기간 일반 4년제의 취업률(53.8%)보다 7%가량 낮은 수치다.

홍 의원은 “학창 시절 오로지 운동에 전념한 선수들은 일반 대학생과 달리 다른 분야로 취업하기가 매우 어렵다.”면서 “말뿐인 학원스포츠 정상화 방안을 넘어 낙오된 자를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2012-11-05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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