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도운 조선족, 난민 대신 불법체류자 된 사연

탈북도운 조선족, 난민 대신 불법체류자 된 사연

입력 2013-06-13 00:00
업데이트 2013-06-13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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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북한 주민의 탈북을 돕다가 중국 공안에 쫓겨 고깃배를 타고 우리나라로 도망친 조선족 여성이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불법 체류자 신세가 됐다.

압록강변에서 2~3분 거리에 있는 중국 길림성 한 마을에 살던 이모(39·여)씨는 탈북 브로커 김모씨의 부탁으로 남편과 함께 2010년부터 이듬해까지 북한 주민 약 20명의 탈북을 도왔다.

이씨는 몰래 압록강을 건너가 북한 주민을 데려오고, 이들이 며칠씩 숨어 있을 수 있는 은신처를 마련해줬다. 브로커 김씨는 그 대가로 이씨 부부에게 삼륜 오토바이 등을 줬다.

하지만 2011년 3월 중국 공안이 김씨를 붙잡은 뒤 그를 통해 탈북 지원에 가담한 사람들을 알아내고 체포에 나서면서 이씨도 위험에 처했다. 이씨 남편은 공안에 체포돼 구금됐다.

중국 형법과 치안관리처벌법은 탈북자들에게 음식, 피신처, 운송수단 등을 제공한 사람을 엄벌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과거 벌금형으로 처벌하던 것을 최고 무기징역형으로 강화했다.

딸과 연변으로 도망친 이씨는 오빠, 다른 탈북자들과 함께 어선을 타고 한국으로 밀항을 시도했다가 우리 해경에 적발됐다.

이씨 오빠는 경제적인 이유로 입국했다고 실토한 뒤 중국으로 돌아갔다. 반면에 이씨는 외국인보호소에서 머무르다가 중국 정부에 의한 박해를 이유로 난민 신청을 했다.

당국이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자 이씨는 소송을 냈고 서울행정법원은 그를 난민으로 인정했다. 중국 국경에서 탈북을 돕다가 한국에 입국한 중국 동포를 난민으로 받아들인 첫 사례였다.

1심 재판부는 “이씨가 적극적으로 중국 정부의 탈북자들에 대한 강제송환 정책에 저항한 사실은 없으나 탈북자 원조 행위 자체를 중국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이씨가 상당수 북한 주민의 탈북을 도와 중국으로 돌아갈 경우 무거운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큰 점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이씨가 올해 초 딸과 함께 중국에 갔다가 3개월 후 딸을 현지에 두고 혼자서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온 출입국 기록이 발목을 잡았다.

중국을 자유롭게 왕래한 데다 딸까지 두고 온 사실이 불리한 증거로 채택된 것이다.

재판부는 “이씨가 자신의 정치적 소신에 따라 탈북 브로커를 도왔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씨가 중국 법에 따라 처벌을 받더라도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한 박해’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씨는 항소심 법정에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휴직한 기존 대리인을 대신할 변호사조차 선임하지 못한 이씨는 현재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국내 어딘가에 잠적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에 관여한 모 변호사는 “중국 동포 사회를 통해 이씨와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며 “사회적으로 의미가 큰 사건이 이렇게 마무리돼 안타깝다”고 전했다.

이씨가 상고장을 내지 않아 변론없이 내려진 패소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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