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아직도 죽은 게 믿기지 않아 살려달라는 마음밖에..”
서울 방화동 공사현장 상판 붕괴사고로 숨진 희생자들의 빈소에는 2일 조문객들의 발길이 끊긴 채 유족들만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빈소를 차린 지 사흘째를 맞았지만, 보상 문제와 장례 절차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인 탓에 유족들은 아직 고인을 보내지 못했다.
전날 박원순 서울 시장과 시공사 관계자들을 만나 울분을 토했던 유족들은 이제 마음을 다스리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고 허동길(50)씨의 큰누나 화자씨와 큰형 동범씨는 이날 오전 9시께 빈소를 찾았다. 중국에서 인천공항으로 들어오는 항공기의 좌석을 구하지 못해 제주도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에야 고인에게 올 수 있었다.
허씨 형제의 부모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화자씨와 동범씨는 고인을 끔찍하게 아끼는 등 사실상 부모나 다름없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연로한 화자씨는 기력이 다한 듯 고인의 영정 사진 앞에서 큰 소리로 울지 못하고 흐느꼈다. 빈소를 찾기까지 긴 여정을 소화해야 했던 탓인지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어려워 보였다.
가족이 다 올 때까지 외부 조문을 일절 받지 않았던 허씨의 유족은 화자씨와 동범씨가 도착하자 다 함께 절을 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유족들은 많이 지친 듯 “지금은 더는 할 말이 없다”며 취재진에게 불편한 기색도 비쳤다. 그러면서 서울시와 시공사에 서운함을 토로했다.
허씨의 고종사촌 누나인 윤성옥씨는 “(동생이) 부실 공사 때문에 억울한 죽음을 당했는데 가족이 바로 오지도 못하고 제주도를 거쳐 와야 했다. 이건 성의의 문제”라며 속상해했다. 윤씨는 부고를 듣자마자 직접 비행기표를 구해 한국으로 건너왔다고 한다.
윤씨는 “(고인이) 일찍 부모를 여의고 큰누나 밑에서 자랐는데, 사고가 나고 여기 오기까지 한참을 기다린 큰누나의 심정이 어땠겠나. 그 마음은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아직도 죽은 게 믿기지 않아 살려달라는 마음밖에 없다”며 “지금 가족들은 깊은 슬픔에 잠겨서 보상 문제 등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층에 빈소를 차린 고 최창희(52)씨의 유족은 이날 오전 허씨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두 가족은 말을 아낀 채 손을 맞잡고 서로 위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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