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한인 9년간 히스패닉계에 무료 점심… 인종 초월한 情

美 한인 9년간 히스패닉계에 무료 점심… 인종 초월한 情

입력 2013-08-21 00:00
수정 2013-08-21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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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단체 ‘굿스푼선교회’ “가족처럼 격려… 고마워”

“고달픈 삶의 모퉁이를 돌면 거기엔 놀라운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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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낮(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애넌데일의 한 공터에서 조영길(오른쪽에서 두번째) 목사 등 한인 자원봉사자들이 히스패닉계 빈민들에게 무료 점심을 나눠주고 있다.
19일 낮(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애넌데일의 한 공터에서 조영길(오른쪽에서 두번째) 목사 등 한인 자원봉사자들이 히스패닉계 빈민들에게 무료 점심을 나눠주고 있다.
19일 낮 12시쯤(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애넌데일의 한 공터. 땅바닥에 앉은 남루한 옷차림의 히스패닉계 30여명 앞에서 손에 성경책을 든 한 동양인이 스페인어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인근 ‘이글레시아 엔 크리스토’ 교회의 조영길(68) 목사였다.

10여분간의 간단한 설교가 끝난 뒤 한인 자원봉사단체 ‘굿스푼선교회’(회장 김재억 목사)에서 나온 대여섯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히스패닉들에게 무료 점심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자원봉사자들이 정성껏 조리한 하얀 쌀밥과 불고기, 중남미식 샐러드가 1회용 도시락 안에 소담스럽게 담겨 있었다. 식사 전 손을 닦으라고 소독용 물수건을 일일이 나눠주는 데서도 세심한 배려가 읽혔다.

이런 풍경은 9년째 매주 월요일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중남미에서 막 이민 와서 고생하는 가난한 히스패닉들이 안쓰러웠던 김 목사가 스페인어가 유창한 조 목사의 도움을 받아 2004년 굿스푼선교회를 설립한 게 시초였다. 한인 사회 내부에서는 처음엔 얼마나 갈까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지만 두 목사를 비롯한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으로 지금은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이곳을 찾는 히스패닉들은 대부분 막노동 등 일용직 노동자들이다. 아침에 일거리를 못 얻어 공치는 날엔 이곳에 와서 점심을 해결하며 고달픈 이민자의 시름을 달랜다. 멕시코 출신의 30대 남성 후안 사파테로는 “아무 보답도 바라지 않고 가족처럼 격려해주는 한인들이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봉사활동이 알려지자 이 지역 미국인 인권 변호사 모임인 ‘저스티스 센터’도 동참했다. 센터 관계자가 매주 월요일 무료 식사 현장에 와서 “무료 법률상담을 해주고 있으니 억울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공지한다.

조 목사는 “예전엔 한인을 ‘치노’(중국인을 일컫는 경멸적 속어)라고 부르던 히스패닉들이 지금은 깍듯이 존경심을 표한다”고 했다.

글 사진 애넌데일(버지니아주)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2013-08-21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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