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 추궁…법정에 차단막 설치
민병주 전 국가정보원 심리전단 단장이 2일 검찰의 증인신문에서 심리전단의 일부 사이버 활동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을 인정했다.다만 북한의 대남 선전·선동으로부터 국민의 사상이 오염되지 않도록 방어적인 심리전을 벌였을 뿐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을 위한 정치 개입은 하지 않았다는 게 증언의 요지였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민 전 단장은 “국정원의 지시·보고 체계와 조직 체계는 같다”며 “부서장 회의 내용을 업무에 반영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작년 8월 27일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한 것과 관련해 심리전단이 이튿날 즉시 관련 사이버 활동 경과를 보고한 것을 두고 원 전 원장의 지시 여부를 추궁했다.
원 전 원장이 신용등급 상향 조정을 적극 홍보하라고 언급한 것은 그해 9월 21일 열린 전부서장 회의에서다. 심리전단이 그보다 먼저 활동을 개시한 것은 별도로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이 매달 부서장 회의를 통한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 이외에 매일 모닝 브리핑 등을 통해 심리전단에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는지를 민 전 단장에게 질문했다.
민 전 단장은 이에 대해 “정확한 배경은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원 전 원장이 어떻게든 관심을 표명하지 않았겠나”고 진술했다.
그는 “무디스 발표가 있자마자 심리전단이 홍보 글을 올린 것은 북한과 종북 세력이 이를 폄훼하거나 선전·선동했기 때문인가”라는 검찰 신문에 “한번 확인해보겠다”고 답했다.
민 전 단장은 다만 “사이버 활동을 꼭 지시에 의해 한 것은 아니다”며 “국정 지원 및 홍보와 종북세력 대처라는 심리전단 역할에 맞게 복합적으로 업무를 추진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원 전 원장의 지시·강조 말씀을 심리전단 직원들에게 그대로 전달하지도 않았다”며 “성향이 다른 직원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은 얘기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민 전 단장은 “국가기관 명의를 사용하지 않고 일반 국민인 것처럼 글을 게시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에게 유·불리한지 등 정치적 고려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공판에서는 2011년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나경원 당시 후보가 ‘1억원 피부과’ 논란에 휘말려 낙선한 뒤 심리전단이 트위터 활동에 나선 정황이 공개되기도 했다.
원 전 원장은 선거 직전인 10월 21일 부서장 회의에서 “종북 세력을 인터넷에서 끌어내야 한다”고 말했고, 선거 이후인 11월 18일 회의에서는 거듭 “선거 정국을 틈타 종북 세력이 활동한다”며 트위터 대응 강화를 주문했다.
검찰에 따르면 심리전단은 그해 11월께 인원을 20명가량 증원해 팀을 꾸리고 트위터를 전담토록 했다. 검찰은 이듬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원 전 원장이 이 같은 지시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민 전 단장은 “선거 때만 되면 북한의 선전·선동이 심해진다”며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세력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라는 원론적인 지시였을 뿐 선거에 개입하라는 지시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민 전 단장은 이날 법정에서 증인석과 방청석 사이에 8첩 병풍 형식으로 된 약 150㎝ 높이의 차단막을 설치한 채 증인신문에 응했다. 신문 자체를 비공개로 해달라는 원 전 원장 측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판은 오는 9일 오전 10시에 속행한다. 국정원 직원 이모씨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어진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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