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성과급제·임금인상·인력충원 등 놓고 견해차 커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이 파업에 돌입한 지 27일로 5일째를 맞았다.노사는 파업 돌입 후에도 간간이 교섭을 이어갔지만, 좀처럼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파업이 장기화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양측은 ▲의사성과급제 및 선택진료제 폐지 ▲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및 인력충원 등의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교섭 진행 방식마저도 노조는 단체교섭을, 사측은 실무교섭을 고집하는 등 이견을 보이고 있어 조속한 협상 타결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단체교섭 vs. 실무교섭
교섭 진행 방식에 대한 노조의 일관된 요구는 오병희 병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단체교섭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병원 측은 원활히 협상을 진행하자면 단체교섭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양측은 파업 돌입 후 지금까지 3차례 실무교섭하는 데 그쳤다.
노조는 “병원 측이 예정된 단체교섭을 일방적으로 거부하고 있다”며 “이는 병원 측의 불성실한 교섭 태도와 소통하지 않는 고압적인 자세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병원 측은 “교섭 거부가 아니라 실무교섭으로 핵심 쟁점에 관한 견해차를 좁히고 나서 본교섭으로 마무리하는 형태가 낫다는 뜻”이라며 “실무교섭이라 해도 병원장의 위임을 받은 교섭위원이 참여하므로 문제될 것은 없다”고 반박했다.
◇의사성과급제 및 선택진료제 폐지
노조는 서울대병원이 공공의료기관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한 채 돈벌이 경영을 한다고 주장하는 가장 큰 근거로 의사성과급제와 선택진료제를 꼽고 있다.
의사성과급제란 환자 수와 검사 건수에 따라 의사들에게 진료수당을 지급하는 제도다. 서울대병원은 초진 환자 특진비 100%, 재진 환자 특진비 50%, 검사비 10%가 의사나 교수들에게 성과급으로 지급된다.
노조는 “환자 수와 검사 건수에 따라 교수들에게 돈을 주다 보니 환자들이 1시간 기다리고서 정작 진료는 1분 만에 끝나는 경우가 빈번하고, 교수 1명이 3∼4개 수술방에서 동시에 수술하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이처럼 많은 성과급이 선택진료비로 충당돼 결국 환자들에게 부담을 전가한다는 게 노조의 지적이다.
이에 병원 측은 “사실상 ‘성과급제’라는 표현은 없다”며 “일을 많이 하는 의사에게 합당한 보상을 해주려고 진료수당을 더 주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선택진료제를 폐지해도 병원이 운영될 수 있다면 환자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관점에서 기꺼이 그렇게 하겠지만 사후보전책이 없는 현 상황에서 선택진료제가 없어지면 600억원의 추가 적자가 생기므로 폐지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임금인상 vs. 동결
노사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은 임금인상이다.
노조는 최소 시간당 1천원이 올라야 한다며 20만9천원 정액 인상, 총액 기준 13.7%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병원 측은 경영 악화 탓에 임금 동결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정부가 공공기관 인건비에 대해 최소 2.8% 인상을 제시했는데도 병원이 정부 지침을 무시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병원 측은 “노조의 요구안을 수용하면 임금 예산이 최소 360억원가량 증가한다”며 “정부 지침을 지키고 싶지만 병원 경영 상태가 최악인 현 상황에서는 노조가 요구하는 수준으로 임금을 인상할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어린이병원 식당 외주 문제
노조는 병원 측이 인건비를 아끼는 데 급급한 나머지 충분한 인력을 고용하지 않아 직원들이 끼니를 거르고 화장실조차 제대로 가지 못하는 등 근무여건이 열악하다고 주장한다.
그나마 일부 부족한 인력을 채워도 대부분 비정규직이어서 장기간 근무하지 못하기 때문에 업무 지속성이 떨어지는 등 문제가 발생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조는 이처럼 충분한 인력을 확보하지 않고 비정규직으로 채우는 임시책이 반복되면 결국 환자들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돌아간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병원 측은 역시 경영 악화를 이유로 당장은 인력 충원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아울러 병원이 수익성을 이유로 어린이병원 식당을 외주업체에 맡기고 있다며 이를 직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식당 운영을 외주화하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져 위생관리가 부실할 수밖에 없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병원 측은 “사실상 사업의 외주화 여부는 병원 고유의 경영 권한”이라며 “충분히 사업 타당성을 검토하고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고 있으므로 노조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반박했다.
◇적자? 흑자? ‘비상경영’ 적정성 논란 = 이들 쟁점에 대한 노사 간 대립은 결국 서울대병원의 실제 경영 상태에 관한 시각차에서 출발한다.
서울대병원은 최근 경영 여건이 나빠지고 있다며 부서별로 예산을 줄이는 등의 내용을 담은 ‘비상경영’을 선언했다.
병원 측은 올해 680억원의 적자가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여기에다 경기침체에 따른 환자 감소, 낮은 의료수가, 4대 중증질환 보장 강화 등이 겹쳐 경영 여건이 앞으로 더 나빠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노조는 “사측이 고유목적사업 준비금을 쌓아놓는 등 실제로는 최근 5년간 수백억원의 흑자를 봤으면서 경영 악화를 핑계로 이에 대한 책임을 노동자와 환자들에게 전가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고유목적사업 준비금은 교육·연구·진료 등 공익사업에 투자할 명목으로 병원이 적립할 수 있는 돈이다.
이에 병원 측은 “고유목적사업 준비금은 수익이 아니라 부채로 계산되고 이를 고려해도 적자폭이 줄 뿐이지 결코 흑자는 아니다”라며 맞서고 있다.
또 적자임에도 수천억원대 신축·증축 공사를 한다는 노조의 비판에는 “모두 비상경영 선언 전부터 진행돼 온 사업으로, 경영상태가 나쁘다고 해서 한참 진행 중인 공사를 무조건 중단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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