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들 해부대 앞에 선 날 ‘소록도의 恨’ 비로 내렸다

법관들 해부대 앞에 선 날 ‘소록도의 恨’ 비로 내렸다

입력 2016-06-20 22:56
수정 2016-06-21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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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 139명 국가상대 소송 5년… 현장검증 나선 법원

한센인 “국가가 격리·낙태 강제” “마취 없이 기계 넣어 수술” 증언
정부측 “강제로 한 수술 아니었다”
병원측 “당시 애 키울 여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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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은 세 번 죽습니다… 발병할 때, 죽은 뒤 해부될 때, 화장될 때” 고흥 연합뉴스
“한센인은 세 번 죽습니다… 발병할 때, 죽은 뒤 해부될 때, 화장될 때” 고흥 연합뉴스 서울고법 민사30부 재판부가 20일 현장검증을 위해 전남 고흥군 소록도를 찾아 한센인이 해부·단종 수술을 받았다는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한센인들은 ‘세 번 죽는다’고 합니다. 처음엔 한센병 발병, 두 번째는 죽은 뒤 해부, 세 번째는 장례 뒤 화장입니다.”(한센인 이남천씨)

“기계를 넣어서 (낙태 수술을) 했어요. 마취를 안 했으니 그렇게 아팠죠. 피를 많이 쏟아 냈지만 별다른 약도 못 받고 그게 끝이었습니다.”(한센인 A씨)

초여름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20일. 전남 고흥군 도양읍 국립소록도병원에 서울고법 민사30부 강영수 부장판사 등 법원 관계자들과 변호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근 제기된 한센인 소송과 관련한 현장점검을 위해서였다. 한센인들은 2011년부터 5건의 국가 소송을 냈지만 법원이 직접 사건의 배경인 소록도를 찾은 것은 처음이다.

이들은 먼저 병원 뒤편에 자리한 검시실로 들어섰다. 검시실 한가운데에는 돌로 만들어진 인체 해부대가 놓였고, 한쪽 벽면으로는 연두색 목재 찬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50여년을 산 이남천(66)씨는 “검시실에서는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죽은 한센인에 대한 해부가 이뤄졌다”며 “20여년 전까지 찬장에는 해부된 아이의 얼굴이나 장기가 담긴 유리병이 가득했다”고 떠올렸다.

재판부는 이어 ‘탄식의 장소’라는 뜻의 ‘수탄장’(愁嘆場)으로 이동했다. 평소 격리 생활을 하던 한센인 부모와 병에 감염되지 않은 자식들이 한 달에 한 번 경계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멀찍이 떨어진 채 눈으로만 만나던 장소다. 검시실, 수탄장 등과 더불어 한센인들이 규정 위반 때 갇히던 감금실, 정관 절제·낙태 수술이 이뤄지던 옛 ‘치료본관’ 자리 등을 둘러보던 판사들의 얼굴은 한껏 찌푸린 날씨처럼 갈수록 어두워졌다.

서울고법 민사30부는 현장점검에 앞서 국립소록도병원 별관 2층 소회의실에서 정관 절제·낙태 수술을 받은 한센인 139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특별재판을 열었다. 한센인 측 박영립 변호사는 “국가는 해방 이후에도 한센인 강제 격리 수용, 단종·낙태, 학살 등을 저질렀다”며 “법적 구제를 통해 한센인들의 한을 치유하고자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측 박종명 변호사는 “한센인의 아픔엔 공감하지만 낙태·정관 수술은 강제가 아니었던 만큼 이에 대한 위로는 특별법에 따른 보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반박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한 70대 한센인 원고는 1960년대에 당했던 낙태 경험을 진술하며 “당시에는 소록도에서 살기 위해 낙태 수술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거 소록도에서 일했던 김인권 여수애양병원 원장은 “소록도는 한센 환자의 아이를 키울 여건이 전혀 되지 않았다”며 “당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판단은 문제가 있다”고 증언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2016-06-21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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