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탓하는 사회적 시각 문제… 강제 알코올치료 등 대책 필요”
만취 상태에서 통제력을 잃고 홧김에 저지르는 ‘음주 범죄’로 무고한 시민들이 봉변을 당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음주범죄에 대해 너그러운 사회적 관행을 개선하고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지난 20일 서울 종로구의 서울장여관에서 중국집 배달원 유모(53)씨가 저지른 방화로 무고한 투숙객 6명이 참변을 당했다. 지난 19일 인천 남구에서는 25세 남성이 만취한 상태로 차를 몰다 추돌사고를 일으켜 4명이 크게 다쳤다. 지난 18일 강원 강릉에선 술에 취해 도로 위에 누워 있던 이모(51)씨가 차에 치여 숨졌다. 모두 술이 원흉이 된 사건들이다.
21일 대검찰청 ‘범죄 분석’ 통계에 따르면 최근 4년간 검거된 4대 강력범죄(살인·강도·성폭력·방화) 범죄자 가운데 음주자의 비율은 2013년 29.5%, 2014년 31.5%, 2015년 30.3%, 지난해 30.4%로 집계됐다. 강력범죄자 10명 가운데 3명은 음주 상태에서 범행했다는 의미다. 특히 방화와 살인은 범죄자 2명 가운데 1명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저지를 정도로 ‘음주범죄율’이 높았다. 지난해 검거된 방화범 1219명 가운데 47.5%인 579명이 음주 상태에서 불을 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음주 방화범은 2013년 46.7%, 2014년 47.0%, 2015년 45.4%로 매년 절반에 가까운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검거된 살인범 중에도 음주 범죄자가 45.3%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음주 범죄를 ‘술 먹고 하는 실수’로 보고 범행을 술 탓으로 돌리는 사회 분위기가 참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방형애 대한보건협회 기획실장은 “음주 범죄를 줄이려면 평소 음주 사고가 우발적이고 사소하다고 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면서 “음주범죄가 재발하는 것을 막으려면 별도의 치료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경찰, 법조계, 의료계 등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내에는 음주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정책이 미미한 편이다. 현재 음주 범죄자에 대한 강제 알코올 치료 명령과 같은 조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반면 미국은 ‘음주 범죄자 해소센터’ 등 검거된 범죄자들을 다루는 별도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 미국 법원에선 음주범죄자가 AA(익명 알코올 중독자 치료 모임) 등의 치료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2018-01-22 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