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당 8만원, 건설용 헬멧…환갑 대원들 불길에 쓰러졌다 [김유민의 돋보기]

일당 8만원, 건설용 헬멧…환갑 대원들 불길에 쓰러졌다 [김유민의 돋보기]

김유민 기자
김유민 기자
입력 2025-03-27 11:22
수정 2025-03-27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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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진화대원 평균 61세…일당 8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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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하동 산불 엿새째인 26일 산청군 시천면 동당리 일대에서 산청군 산불진화대원들이 방어선 구축 작업 중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산청군 제공
경남 산청·하동 산불 엿새째인 26일 산청군 시천면 동당리 일대에서 산청군 산불진화대원들이 방어선 구축 작업 중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산청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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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하동 산불 엿새째인 26일 산청군 시천면 동당리 일대에서 산청군 산불진화대원들이 방어선 구축 작업 중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산청군 제공
경남 산청·하동 산불 엿새째인 26일 산청군 시천면 동당리 일대에서 산청군 산불진화대원들이 방어선 구축 작업 중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산청군 제공


환갑을 넘긴 진화대원이 산불 현장 최전선에 섰다. 건축현장에서 쓰는 안전모를 썼고, 등짐펌프 하나를 메고 있었다. 방화복도, 방염텐트도 없었다. 그리고 영영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지난 21일부터 엿새간 이어진 경남 산청·하동 일대 대형 산불은 60대 예방진화대원 3명과 이들을 인솔한 30대 공무원 1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숨진 진화대원들은 모두 창녕군청 소속 60대 계약직 대원이었다. 그들이 받은 일당은 8만 240원, 평균 연령은 61세. 이들에게 지급된 장비는 신체 보호 기능이 전무한 건설용 헬멧과 불갈퀴, 그리고 물통 하나였다.

진화대원들은 산림청 소속이 아닌, 각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공공근로 인력으로 채워진다. 산불 예방과 감시, 진화 보조가 이들의 주된 임무지만 정작 불길이 번지면 가장 먼저 산에 오른다. 이번처럼 돌풍이 역류해 불길을 삼킬 때, 진화대원들은 맨몸으로 고립된다.

당시 이들에게 지급된 헬멧은 소방용이 아닌 건설용 안전모였다. 열에 녹아내릴 정도로 부실한 장비였고, 방염복도 지급되지 않았다. 진화도구는 낙엽을 긁는 불갈퀴와 물이 담긴 등짐펌프가 전부였다. 전문 소방대원이 수개월간 훈련을 받은 뒤 화재 현장에 나서는 것과 달리, 진화대원 교육 시간은 고작 10시간에 불과했다.

진화대원 투입 기준도 모호하다. 이번에 숨진 대원들도 사전에 위험 예측 시스템이나 긴급 탈출 훈련 없이 산불 속으로 들어갔다. 공공운수노조 산림청지회는 “소방용 안전모가 아닌 건설용 헬멧이 불에 녹아내렸다는 제보까지 있다. 불길이 휘몰아치는 상황에서 이들을 투입한 결정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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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안동 등 북동부권 4개 시·군으로 확산해 큰 피해를 입히고 있는 가운데, ‘역대 최악의 산불’ 진화를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소방관들의 모습이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안동 등 북동부권 4개 시·군으로 확산해 큰 피해를 입히고 있는 가운데, ‘역대 최악의 산불’ 진화를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소방관들의 모습이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현장에서 살아 돌아온 생존자들의 증언은 참담하다. 등짐펌프 하나로 불길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몇몇은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유족과 현직 소방대원들, 시민들 사이에서는 “예견된 비극이었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네티즌은 “아버지도 산불진화대원이다. 장비가 없어 늘 걱정된다”고 했다. 또 다른 시민은 “1990년대 홍제동 순직 사고 이후에도 달라진 게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달 전남 장성에서는 76세 지원자가 체력검정 도중 쓰러져 숨졌고,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전국 곳곳에서 체력시험 중 혹은 현장 투입 중 고령자의 사망 사고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일부 지자체는 오히려 체력검정 기준을 완화하거나 생략해 고령자들의 참여 문턱을 낮추고 있다. 인력 부족 때문이다. 생명을 담보로 한 일자리였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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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산불진화대원들
지친 산불진화대원들 지난 22일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사흘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친 진화대원들이 24일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2025.3.24. 경북도소방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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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길안면 산불 진화
안동 길안면 산불 진화 경북 의성 산불이 안동 길안면으로 번져 25일 이틀째 확산하는 가운데 진화대원들이 불을 끄고 있다. 2025.3.25 안동시 제공.


고령화된 진화대, 열악한 처우 개선 시급

전국 산불예방진화대원 9600여명 중 대다수가 기간제 또는 무기계약직이다. 강원지역 평균 연령은 62세, 일부 지역은 68세를 넘는다. 젊은 층은 열악한 처우와 위험성에 지원을 꺼린다.

월급은 특수진화대 기준 280만원 안팎. 각종 수당도 명시돼 있지 않아 실수령액은 더 적다. 주 5일제지만, 산불이 발생하면 밤낮 없이 불과 싸워야 한다. 고된 노동에 비해 돌아오는 것은 불확실한 계약과 불완전한 보호뿐이다.

진화 차량과 장비도 대부분 10년 이상 노후화돼 있다. 응급 장비가 부족한 지역도 많아 체력검정조차 재난이 될 정도다.

고용노동부는 “화재 진압 업무 수행 중 발생한 사망 사고로 보고 있다”며 이번 사고를 산업재해로 판단하고,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다.

전문가들은 구조적 개편 없이는 유사 사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고령화 구조의 해소, 전문성 강화, 정규직 채용 확대, 장비 현대화가 시급하다. 이를 위한 전용 예산 확보와 국비 지원도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소방공무원노동조합은 “국가 차원의 산불 대응 시스템과 예산이 없기 때문에 지방이 모든 걸 떠안고 있다”며 “이런 시스템 아래선 대형 산불이 날 때마다 누군가는 죽게 되어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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