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의식한 사법부 무리한 ‘소통’ 행사 논란

여론 의식한 사법부 무리한 ‘소통’ 행사 논란

입력 2013-07-04 00:00
업데이트 2013-07-04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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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캠퍼스 열린 법정’ 두고 비판 제기돼

“솔직히 부담스럽죠. 근데 거절하면 재판부가 싫어할까 봐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한 법원의 공개 재판 행사에서 원고 측 대리인을 맡은 변호사는 이같이 하소연했다.

나름 민감한 사건을 여러 사람 앞에서 드러내는 일이 싫은데도 법원 측이 이른바 ‘국민과의 소통’을 명분으로 공개 재판에 협조를 요청하는 경우 당사자가 이를 거절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건 당사자뿐 아니라 상당수 법관도 원외(院外) 재판처럼 무리한 행사는 부적절하다는 견해에 수긍하는 분위기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재판부가 정해진 법정 바깥에서 공개 재판을 여는 일련의 행사를 두고 법원 안팎에서 날카로운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교육을 목적으로 관내 로스쿨에서 학생들을 초대해 실제 재판을 여는 서울고등법원의 ‘캠퍼스 열린 법정’ 행사에 관한 뒷얘기가 많다.

작년 11월 전남 고흥 현지에서 환경소송 항소심 재판을 연 적 있는 서울고법은 지난 3월과 5월 연세대·성균관대 로스쿨에서 잇따라 행정소송과 민사소송 재판을 선보였다.

서울고법의 이런 노력은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최근 사법부의 흐름을 앞장서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취임 초기부터 ‘법원은 국민 속으로, 국민은 법원 속으로’를 모토로 삼아 각급 법원에 창의적인 행사 기획을 직·간접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행정처는 작년 5~6월 세계 각국의 사법부 소통 사례를 연구해 그해 9월 ‘국민과 소통하는 열린 법원’이라는 제목으로 자료집을 발간·배포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행정처 연구 결과를 봐도 불특정 다수 국민과 소통한다면서 재판부가 법정 바깥에서 재판을 하는 행사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일이다.

로스쿨 모의법정에서 실제 사건을 심리한 사례는 중국, 일본, 프랑스, 독일 등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사법부가 주최하는 소통 행사는 통상 판사가 학교를 방문해 강의하는 수준이다.

미국도 매사추세츠주, 캘리포니아주 등 일부 지역에서만 원외 재판을 하고 있다. 그나마 내부적으로 이견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상당수 법관마저 대법원 기조에 부응하는 행사에 부정적인 시각을 암암리에 드러내고 있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소통을 명분으로, 사건과 관계없는 로스쿨 같은 곳에서 재판을 연다고 하면 사법 선진국에서는 깜짝 놀랄 것”이라며 “여론을 너무 의식하다 보니 자꾸 무리한 행사를 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소통 행사의 ‘그늘’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한 지방법원 판사는 “원외 재판을 준비하려면 품이 많이 든다. 재판부로서는 그만큼 다른 사건을 들여다보는 여유가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이벤트가 그렇듯 겉으로 보기는 좋다. 하지만 그러면서 놓치는 부분이 크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고법은 오는 5일 고려대 로스쿨에서 세 번째 ‘캠퍼스 열린 법정’ 행사를 열고, 상황에 따라 이를 정례화할 계획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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