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씨 취임 전 ‘국세청 운영경비’ 명목…허씨는 방조범
CJ그룹으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청탁 대가로 수억원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전군표(59) 전 국세청장과 허병익(59) 전 국세청 차장이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윤대진 부장검사)는 13일 전 전 청장과 허 전 차장을 각각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와 뇌물수수 방조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전 전 청장은 국세청장 취임 직전인 2006년 7월 초순 허씨와 공모해 향후 청장으로 취임할 경우 필요한 기관운영비를 마련하는 방안을 협의한 뒤 CJ그룹으로부터 미화 30만 달러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계획 실행’을 담당한 허씨는 고려대 동기인 신동기 CJ 글로벌 홀딩스 부사장을 통해 이재현 CJ그룹 회장에게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허씨는 이후 신 부사장의 사무실에서 향후 CJ그룹 및 이 회장과 관련된 세무 현안에 대해 잘 봐달라는 취지의 청탁과 함께 30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2억8천397만원)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허씨는 신 부사장에게서 미화 30만 달러가 든 가방을 받아 이를 곧바로 전 전 청장 사무실 책상에 두고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미화 30만 달러는 이 회장의 개인 재산을 관리하던 관재팀이 마련한 돈, 즉 이 회장의 비자금에서 나온 것이라고 검찰은 설명했다.
앞서 이 회장 측은 그해 하반기에 국세청의 주식이동 세무조사가 예정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세금을 내지 않을 방안을 모색하다가 그해 7월 초 서울지방국세청의 세무조사(8월∼12월) 실시 계획을 알게 됐다.
검찰은 ‘세무조사 무마’라는 CJ 측의 의도와 ‘국세청 운영경비 마련’이라는 전 전 청장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뇌물수수로 이어졌다고 판단했다.
전 전 청장은 이후 CJ그룹에 대한 세무조사 기간인 그해 10월 서울시내 호텔에서 이 회장과 신 부사장, 허씨와 함께 식사 자리를 가진 후 3천500만원 상당의 프랭크 뮬러 손목시계 1점을 받아 챙긴 혐의도 받고 있다. 허씨도 이 자리에서 2천만원 상당의 프랭크 뮬러 여성용 시계를 1점 받았다.
전 전 청장은 이 회장과 직접 인사도 나눌 겸 금품 제공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려고 허씨를 통해 식사 자리를 마련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 전 청장은 CJ측에서 받은 30만 달러를 청장 취임 후 각종 국제회의 등 해외 출장 비용과 직원 경조사·격려 비용 등으로 썼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CJ측에서 받은 시계는 지난 1일 소환됐을 때 검찰에 임의제출했다.
검찰은 국세청이 2006년 이 회장의 주식 이동 과정을 조사하고도 세금을 추징하지 않은 것이 CJ측 로비 때문인 것으로 의심하고 당시 세무조사 자료를 분석하고 조사에 참여한 직원과 결재라인에 있던 국세청 간부들을 소환 조사했다.
그러나 전 전 청장이 CJ그룹의 세무조사에 구체적 지시를 내리거나 관여한 정황은 찾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국세청은 당시 CJ그룹과 이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였으나 이 회장의 차명주식이라는 점을 적발하지 못해 세액 추징을 하지 못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검찰은 그러나 국세청장이라는 직위 자체가 세무와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고 산하 지방국세청 등 각급 기관을 지휘·통솔하는 위치인 점, CJ그룹에 대한 2006년 세무조사와 금품수수 시기가 맞아 떨어지는 점 등을 고려해 포괄적 대가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전 전 청장은 검찰 조사에서 대체로 혐의를 인정했지만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적은 없다”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허씨의 경우 전씨의 뇌물 수수 범행에 가담한 점은 인정되지만 ‘뇌물 전달·주선자’로서 가담 정도가 약한 ‘종범’으로 판단하고 방조범으로 기소했다. CJ측에서 받은 시계의 경우 금액이 3천만원 미만이라 기소할 수 있는 시효(5년)가 지나 처벌하지 못한다고 검찰은 밝혔다.
뇌물공여 혐의의 공소시효(5년)가 지나는 바람에 전 전 청장에게 금품을 제공한 이 회장과 신 부사장도 추가 기소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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