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당시 ‘운명의 그날’ 맞춰 방한…”25주년 맞아 변화에 나서겠다”
세계 스포츠 역사상 최악으로 꼽히는 약물 스캔들의 장본인 벤 존슨(52·캐나다)이 운명의 날, 운명의 장소인 서울올림픽 주경기장을 찾는다.이번에는 25년 전과 정반대로 도핑 방지를 위한 노력을 촉구하는 홍보 대사 역할이다.
호주에 본거지를 둔 스포츠의류 브랜드인 ‘스킨스’는 최근 출범한 도핑 방지 캠페인인 ‘올바른 길을 찾도록(#ChooseTheRightTrack)’의 일환으로 존슨의 세계 투어를 진행 중이다.
영국과 캐나다, 미국, 일본 등을 순회하는 존슨의 일정은 이달 24일 서울 잠실의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끝난다.
9월 24일의 서울올림픽 주경기장은 25년 전 존슨이 역대 최악의 레이스로 기억되는 ‘그 경기’를 치른 날짜와 장소다.
1988년 9월 24일 이곳에서 열린 서울올림픽 육상 남자 100m 결승에서 존슨은 당시 세계신기록인 9초79를 찍고 칼 루이스(미국·9초92), 린포드 크리스티(영국·9초97)를 제치고 우승했다.
루이스를 제쳤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상상조차 하지 못하던 수준의 세계기록까지 경신하면서 세계 육상계는 흥분에 휩싸였다.
하지만 흥분이 경악으로 바뀌는 데에는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튿날 벤 존슨이 금지약물인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는 금메달과 기록을 박탈당하고 역대 최악의 ‘약물 탄환’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육상계에서 영구제명된 그는 몇 차례 트랙 복귀를 타진했으나 무위에 그쳤고, 오히려 당시 사건이 조작됐다는 주장을 펼쳤다가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약물 추방을 위한 캠페인에 참가, 4반 세기 만에 180도 바뀐 입장에서 자신의 몰락이 시작된 그곳에 찾아오는 셈이다.
’유로스포츠’에 따르면 존슨은 서울올림픽 당시와 같은 6번 레인에 서서 약물 추방을 위한 더 강한 대책을 촉구하는 문구를 펴들 계획이다.
존슨은 이 캠페인의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한 서한을 통해 “당시 우승으로 평생의 꿈을 이뤘지만, 24시간 뒤 도핑에 적발돼 타이틀과 기록 모두가 날아갔다”고 회상했다.
그는 “나는 여전히 잘못된 선택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면서 “약물은 내 선수 인생을, 명성을, 인생을 망쳤고 내 몸에도 나쁜 영향을 줬다”고 참회했다.
이어 “25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많은 선수가 나와 같은 실수를 저질러 도핑에 적발되고 있다”면서 “인생 최고이자 최악이던 순간의 25주년을 맞아 변화의 사절로 나서려 한다”고 자신이 마음을 바꾼 이유를 밝혔다.
존슨은 “도핑을 한 선수는 당연히 처벌받아야 하지만, 별개로 선수들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움과 교육을 받아야 한다”면서 “이번 투어를 통해 경각심을 일깨우고 시스템이 변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는 스킨스와의 계약서까지 공개하면서 “돈을 받고 하는 일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해야 한다는 신념에 따른 것”이라고 자신의 행동이 순수한 동기에서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벤 존슨은 영국과 자메이카 등을 돌면서 최종 목적지인 서울을 향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한편, 대한육상경기연맹의 한 관계자는 “아직 존슨의 방한에 대해 연맹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제안을 받은 일은 없다”면서 “그런 일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문만 전해 들은 상태”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