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패싱…민폐… 발리예바 ‘도핑’이 삼킨 올림픽

침묵… 패싱…민폐… 발리예바 ‘도핑’이 삼킨 올림픽

최병규 기자
입력 2022-02-16 22:26
업데이트 2022-02-17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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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 방송사들 해설 보이콧
리핀스키 “봐선 안 될 스케이팅”

IOC, 메달 따도 시상식 않기로
‘별표’ 붙여 공식기록도 불인정

쇼트 25위 프리 출전 ‘러키 루저’
동료들 4년의 노력 ‘스토리’ 묻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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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피겨 스타 카밀라 발리예바가 지난 15일 중국 베이징 수도체육관에서 열린 베이징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을 마친 뒤 눈물을 보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다. 국내외 방송 중계진은 발리예바의 연기가 진행되는 동안 침묵으로 항의를 표시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발리예바 도핑 검사에서 금지 약물 1종 외에 금지되지 않은 약물 2종이 추가로 검출됐다고 보도했다. 베이징 AP 연합뉴스
러시아 피겨 스타 카밀라 발리예바가 지난 15일 중국 베이징 수도체육관에서 열린 베이징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을 마친 뒤 눈물을 보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다. 국내외 방송 중계진은 발리예바의 연기가 진행되는 동안 침묵으로 항의를 표시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발리예바 도핑 검사에서 금지 약물 1종 외에 금지되지 않은 약물 2종이 추가로 검출됐다고 보도했다.
베이징 AP 연합뉴스
‘투명인간’이 됐다. 있어도 없는 것과 다름없는 사람이 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메달과 꽃다발 수여를 하지 않기로 했다. 메달권에 입상하면 기록에 ‘별표’(잠정기록 처리)도 붙인다. 동료들도 등을 돌렸다. 은반의 연기를 생생히 전해야 할 세계 각국의 방송사들도 마이크를 껐다. 이른바 ‘발리예바 패싱’이다.

지난 15일 열린 베이징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은 ‘약물 파동’의 중심에 선 카밀라 발리예바(16·러시아올림픽위원회)에게 집중됐다. 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은반에 섰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트리플 악셀 점프를 뛰다가 회전축이 흔들리며 두 발로 착지하는 바람에 첫 과제부터 수행점수(GOE)에서 감점을 당했다. 연기력도 평소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발리예바는 올림픽 직전 유럽선수권 대회에서 세웠던 자신의 최고점인 세계 신기록 90.45점에 한참이나 못 미친 82.16점으로 올림픽 여자 싱글 첫 스테이지를 마쳤다. 그는 점수 발표 대기 장소인 ‘키스 앤드 크라이 존’에 들어설 때까지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싸늘하고 매서운 눈초리의 느낌을 모를 리 없었다.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의 출전 허용 발표 직후 IOC는 발리예바가 메달 순위에 들어가면 시상식을 열지 않기로 했으며, 기록에도 별표를 붙여 판정에 항의했다. 꽃다발 세리머니도 없앴다. 또 쇼트프로그램 당일 오전에는 상위 24명에게 주어지는 17일의 프리스케이팅 출전권을 발리예바가 따면 25위 선수에게도 출전권을 주겠다고 했다. 사실상 발리예바를 24명 순위에 없는 선수 취급을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쇼트프로그램에서 25위에 그친 제니 사리넨(핀란드)은 ‘러키 루저’가 됐다.

발리예바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미디어들도 따끔한 일침과 ‘무언의 항의’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ESPN은 “많은 사람이 ‘그곳에 있으면 안 된다’고 했지만 발리예바는 결국 빙판 위에 섰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올림픽 주관 방송사 NBC의 해설을 맡은 19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금메달리스트 태라 리핀스키와 2008년 세계선수권 남자 싱글 동메달리스트 조니 위어는 발리예바가 연기하는 동안 멘트 없이 침묵을 지켰다.

뉴욕포스트는 이를 두고 ‘위어와 리핀스키의 조용한 분노’라고 표현했다. 리핀스키는 연기가 끝나고 나서야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발리예바의 올림픽 쇼트프로그램이었다는 것”이라면서 “이 스케이팅을 봐서는 안 됐다”고 쏘아붙였다. 위어도 “매우 유감”이라고 호응했다. 국내 방송사의 곽민정(KBS), 이호정(SBS) 해설위원 등도 발리예바의 연기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4년 동안 빙판 위에서 수없이 넘어지고 굵은 땀을 흘려가며 공정하게 올림픽을 준비했던 선수들의 ‘스토리’는 ‘발리예바 회오리’가 집어삼키면서 베이징 은반에서 이미 사라졌다. 남은 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부끄러운 메달뿐이다.
최병규 전문기자
2022-02-17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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