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가 원금 4배된 노인도, IMF로 무너진 일용직 아빠 빚도 탕감

이자가 원금 4배된 노인도, IMF로 무너진 일용직 아빠 빚도 탕감

신성은 기자
입력 2017-11-29 11:00
수정 2017-11-2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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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모(72) 할머니는 몇 년째 폐지를 모아 팔고 있다.

온종일 일해 5만원 정도를 손에 쥔다. 집에는 당뇨와 관절염 탓에 누워만 지내는 남편(76)이 있다. 슬하에 자녀는 없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등록된 덕에 월 84만원을 받는다. 남편 약값에 월세, 생활비 대기에도 빠듯하다.

이런 금 할머니에게 매년 겨울 추위보다 혹독한 게 빚 독촉이다. 15년 전 남편이 장사라도 하겠다면서 할머니 이름으로 빌린 850만원이 화근이었다.

원금은 눈덩이가 굴러가듯 이자를 얹고 또 얹었다. 이제 연체이자만 3천500만원이 됐다. 도저히 갚을 길이 없다.

금 할머니는 가끔 국민행복기금에서 “부채를 90% 감면해 드릴 테니, 최장 10년간 분할상환하시라”는 연락을 받는다. “도통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다”는 금 할머니다.

국민행복기금으로 연체채권이 넘어간 장기·소액연체자 83만명 가운데 약 절반(40만3천명)은 금 할머니처럼 돈을 갚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 버티는 채무자라고 금융위원회는 전했다.

금융위는 금 할머니에 대한 채권 추심이 금지된다고 29일 발표했다. 3년이 지나도 몰래 숨겨둔 재산 따위가 발견되지 않으면 원금과 연체이자가 모두 사라진다.

한때 중소기업을 운영하며 ‘사장님’ 소리를 듣던 김모(53) 씨는 올해 20년째를 맞은 ‘IMF 구제금융 사태’로 전 재산을 날렸다. 이제 일용직으로 생계를 꾸린다.

매일같이 인력사무소에 나가도 일감이 일정치 않았다. 결국 대부업체에서 생활비로 빌린 150만원이 김 씨의 족쇄가 되고 말았다.

그때부터 11년째 채권 추심에 시달렸다. 연체이자가 불어나면서 원금을 포함해 800만원을 갚아야 하는 처지다.

국민행복기금의 채권 매입 대상에서도 제외됐던 김 씨와 같은 미약정 장기·소액연체자는 76만2천명이다.

실제로 원리금을 갚을 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면 대부업체가 보유한 김 씨의 채권은 이번에 새로 만들어지는 기금에 넘어간다. 3년만 지나면 빚은 사라진다.

김 씨는 관악구의 단칸방에서 홀로 살고 있다. 아내와 세 자녀는 집값이 싼 지방으로 내려가 지내고 있다. 그는 “하루빨리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 가족과 함께 어깨 펴고 사는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고 말했다.

A(34·여) 씨는 2004년 성인이 되자마자 어머니의 빚보증을 서게 됐다. “엄마가 알아서 할 테니, 아무 걱정 말라”는 말만 듣고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미용 자격증을 딴 A 씨는 강남의 유명 미용실에 취직했다. 한푼 두푼 모으는 재미를 알게 될 때쯤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다.

갑자기 체크카드가 정지돼 알아보니 어머니가 채무를 연체했고, 연대보증을 선 자신이 빚을 떠안게 됐다는 것이다.

헤어디자이너 꿈은 접어야 했다. 무슨 수를 쓰든 빚을 갚는 게 먼저였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빚을 갚을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어머니를 원망하고, 사회와 단절됐다”고 말했다.

냉소적인 성격으로 바뀐 A 씨는 국민행복기금이 보낸 우편물조차 ‘추심업체의 독촉장이겠거니’라며 쳐다보지도 않았다.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채권 중 인적보증을 선 연대보증은 본인 신청이 없어도 간이 심사만으로 즉시 채무가 면제된다. A 씨도 보증채무가 사라지는 지원 대상자에 포함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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