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왕따가 돼 본 적이 있는가/박건형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왕따가 돼 본 적이 있는가/박건형 사회부 기자

입력 2012-01-04 00:00
수정 2012-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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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형 사회부 기자
박건형 사회부 기자
그날, 수능 성적표를 받으러 학교에 갔다가 들었다. “정훈(가명)이가 죽었대.” “왜?” “자살했대.” 정훈이는 ‘왕따’였다. 근거도 없는 뜬소문이 나돌았고, 다들 그를 외면했다. 장례식에도 반장만 억지로 참관했다. 1995년 겨울의 일이었다. 몇년 전 동창회에서 누군가 정훈이 얘기를 꺼냈다. 그가 왕따가 된 이유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누구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부담은 느끼고 있었다. 얘기는 10분을 넘기지 못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을 가해자들이 계속 거론하는 게 불편했기 때문이다.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 이후 학교폭력과 집단따돌림 대책이 쏟아진다. 청와대, 교육당국, 심지어 경찰까지 나섰다. ‘발본색원’할 태세다.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 쏟아내는 대책들이 정말 효과가 있을까에 대해서는 회의가 앞섰다. 1995년 한 고등학생이 학교폭력으로 자살하자 ‘학교폭력근절종합대책’이 나왔다. 1997년, 2001년, 2004년, 2005년에도 사건과 대책은 이어졌다. 그러나 사정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접근법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탓이다. 대책마다 ‘처벌과 지도’는 넘친다. 그러나 학생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모색과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당장은 처벌이 무서워 몸을 사리겠지만 언제든 독버섯처럼 솟아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16년 전, 친구들이 정훈이를 마치 벌레 보듯 따돌릴 때, 주변의 어른들 누구도 그런 사실을 몰랐다. 무심히 정훈이에게 침을 뱉고 손가락질을 해대는 우리를 누군가 나무랐다면, 또 비극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를 환기시켜 줬더라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왕따나 학교폭력 피해자가 돼 신음하기 전에, 또 누군가를 그렇게 만들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진정한 대책이라면 누구도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모두가 당사자가 되어 그들의 말을 들어줘야 한다. 정책도 그래야 한다. 학생들을 모른다는 점을 인정하고 서서히, 지속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대책을 빨리 내놓는 게 결코 선일 수는 없다.

kitsch@seoul.co.kr

2012-01-0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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