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트라우마/최용규 논설위원

[길섶에서] 트라우마/최용규 논설위원

입력 2017-04-04 22:46
수정 2017-04-05 00:35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중국과 수교한 이듬해 상하이 공항은 우리네 시골 공항. 방풍림에 갇힌 편도 2차선 공항고속도로(?)를 한 30분쯤 달렸을까. 붉고 노란 간판 속에 숨어 있는 호텔 식당 문에 들어서자마자 질겁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익숙하지 않은 음과 멜로디를 타고 콧속에 빨려드는 그놈의 향(香). 속은 뒤집히고 머릿속은 하얗고, ‘멘붕’이다. 큼직한 요리 접시에 생선이며 뭐며 수없이 올라왔지만 숟가락 드는 게 겁이 났다. 난징은 어땠나. 흰죽을 안주 삼아 백주로 허기를 달래고, 중?일 합작 구이린(桂林)의 호텔의 아무 맛 없는 질긴 비프스테이크는 2차 멘붕을 일으켰다.

우럭이 풀어진 미역국, 칼국수, 탕수육…. 거부감 없는 메뉴다. 무엇이든 OK. 헌데 이게 웬일. 최종 결정된 메뉴는 인도 음식 카레다. (좋아서라기보다 올라오면 먹는) 국산 카레와 다르겠지…. 걱정이 없는 게 아니지만 창신동 골목시장 안 인도음식점은 이런 기우를 한 방에 날려 보냈다. 이상야릇한 향도, 속을 뒤집는 향신료 맛도 느끼질 못하겠다. 맛있다. 트라우마는 트라우마에 갇혀 있을 때 트라우마. 트라우마를 이기는 것은 경험이라는 걸 봄날 알았다.

최용규 논설위원 ykchoi@seoul.co.kr
2017-04-05 3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상속세 개편안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상속되는 재산에 세금을 매기는 유산세 방식이 75년 만에 수술대에 오른다. 피상속인(사망자)이 물려주는 총재산이 아닌 개별 상속인(배우자·자녀)이 각각 물려받는 재산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유산취득세)이 추진된다. 지금은 서울의 10억원대 아파트를 물려받을 때도 상속세를 내야 하지만, 앞으로는 20억원까진 상속세가 면제될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속세 개편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동의한다.
동의 못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