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콴유 사후 싱가포르 어디로 가나

리콴유 사후 싱가포르 어디로 가나

입력 2015-03-23 11:10
수정 2015-03-2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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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경제 기적’으로 일컬어지는 싱가포르에서 ‘국부’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의 타계는 한 시대를 마감하는 상징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리 전 총리는 이미 현실 정치에서 물러난 지 오래이기 때문에 그가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싱가포르의 정치가 불안해지거나 국민이 동요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러나 경제 개발과 성장을 위해 엄격한 사회 통제를 실시했던 ‘리콴유 시대’는 그의 타계와 함께 점차 변모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아시아의 가장 부유한 나라로 탈바꿈한 싱가포르에는 국민의 정치적 참여와 언론 자유 확대, 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흐름은 지난 2011년 실시된 총선에서도 확연히 드러난 바 있다.

리 전 총리가 창당했던 인민행동당(PAP)은 1959년부터 지금까지 장기 집권하고 있으며 당시 총선에서도 전체 87석 중 81석을 차지하며 압승했다.

그러나 외관 상의 압승은 실제 내용 상으로는 패배였고 PAP에는 큰 경종이었다.

야당인 노동당(WP)이 사상 최다인 6석을 획득하며 약진한 것으로 평가받았으며, 1당 장기집권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리 전 총리의 아들인 리셴룽(李顯龍) 총리는 총선이 끝나고 나서 “이번 선거는 싱가포르 정치 지형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잘못된 것들을 고쳐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전해인 2010년 사상 최고의 경제성장률(14.5%)을 기록했다는 대형 호재가 있는 시점에 실시된 이 총선에서 야당에 많은 의석을 내준 것은 국민의 정서 변화와 정치 개혁에 대한 욕구 분출을 의미하는 것이다.

국민 불만은 1차적으로 물가 및 주택 가격 상승, 외국인 증가에 따른 취업 기회 감소 등 경제적인 요인에서 비롯됐으나 정치적 자유 확대와 개혁에 대한 요구도 적지 않았다.

싱가포르는 경제 개발 과정에서 엄격한 사회 통제를 실시했으며, 이 때문에 국민의 정치 참여나 언론 자유는 적지 않게 억압됐다.

리 전 총리는 아시아가 서구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국민 자유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며 마약사범들을 사형에 처하고, 식민지 시절의 태형 제도를 유지했으며 길에 껌만 뱉어도 무거운 벌금을 물렸다.

국민이 집회나 시위를 할 수 있는 장소는 시내 공원 내 특정 지점으로 제한했다.

싱가포르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캐서린 림은 2011년 총선 직후 “국가적인 번영에도 불구하고 시민의 자유가 부족한 것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사회 저변에 강하게 흐르고 있다”며 정부의 통치 방식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 변화 욕구에 맞춰 집권 PAP나 리셴룽 총리도 적극적인 정치 및 사회 정책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리 총리는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외국인 유입 속도를 대폭 늦추는 정책을 채택했으며, 물가와 집값을 잡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나 정치 참여를 억압하는 문화나 사회 분위기는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리셴룽 총리의 국부펀드 관리를 비판했던 블로거가 명예 훼손으로 제소당하는가 하면, 동성애 권익 옹호 운동이 기성 종교계로부터 비난받기도 했다.

싱가포르는 당분간 아시아의 최고 부자 나라라는 지위를 유지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소셜네트워크 등에서 나타나는 언론 자유나 정치 참여 확대 요구에도 사회 불안이 조성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2004년 총리직에 오른 리셴룽 총리의 집권 기간이 10년을 넘기면서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논의도 조금씩 일고 있다.

싱가포르는 올해 독립 5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축하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신생 독립국이었던 싱가포르가 독립 후 장년의 나이에 들어가면서 점차 정치적 자유를 확대하고, 사회 통제를 완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 과정에서 리 전 총리의 타계는 한 시대의 마감과 새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분기점을 상징할 것이라는 데 큰 이견이 없다.

싱가포르 경영대학의 유진 탄 법학과 교수는 “그의 타계는 한 시대의 마감을 표시하는 것”이라며 “이는 싱가포르가 지금부터 앞으로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질문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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