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주 작가와 한국문학 번역가 8명의 ‘유쾌한 수다’
“한국 문학을 번역할 때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쉼표예요. 서양어에서는 쉼표 사용이 훨씬 엄격하잖아요. 작가님 글은 쉼표가 무척 많아서 계속 벽을 만나는 것 같았어요.” “의식하지 못했는데 한국어로만 가능한 문장을 생각하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번역이 불가능한, 한국어의 특수한 구조에서만 나오는 문장이요. 본의 아니게 죄송하네요.”(웃음)지난달 31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한국 문학 번역가들. 윗줄 왼쪽부터 디나 예히야(이집트), 윤선영(독일), 김혜정(스페인), 아랫줄 왼쪽부터 장 클로드 드크레센조(프랑스), 안드레아 데 베네디티스(이탈리아), 안데시 칼손(스웨덴), 한유주 작가, 오옥매(중국).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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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이날 한 작가의 단편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를 두고 대화를 나눴다. 번역원이 이날 행사를 준비한 것은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한국 문학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이다. 다양한 지원 사업에도 불구하고 한국 문학 번역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꾸준히 성장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2001년 창립 이후 번역원이 출간 지원 사업을 통해 펴낸 한국 문학 작품은 28개 언어 603권에 불과하다.
한 작가는 황석영과 박완서 등 유명 작가의 작품을 주로 접해 온 해외 번역가들에게 생소한 편이다. 전통적인 서사의 흐름을 따라가는 대신 이야기 구조를 무너뜨리는 글쓰기로 한국 독자들에게도 다소 난해한 작가다. 하지만 번역가들은 오히려 그런 면에서 작가의 글에 반가움을 표한다. 남편 안데시 칼손(47)과 스웨덴어로 한국 문학을 번역하고 있는 박옥경(47)씨는 “남북 관계나 역사 문제를 다룬 소설은 많지만 젊은 작가들의 책은 접하기 어렵다”면서 “해외 에이전시에서도 신진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크다”고 말했다.
번역가들이 무엇보다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문화적 차이다. 주 이집트 한국 대사관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디나 예히야(26)나 이탈리아에서 온 안드레아 데 베네디티스(35) 같은 원어민 번역가는 물론이고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한 김혜정(53)씨나 윤선영(45)씨도 빠르게 바뀌는 한국 문화를 모두 따라잡지는 못한다. 이날 행사에서 취업난과 ‘잉여’ 세대, 부동산 문제 등에 대해 폭넓은 대화가 오간 것도 그 때문이다. 예히야는 “아랍 문화에는 없는 ‘때밀이’ 같은 단어를 번역할 때면 정말 난감하다”고 손사래를 쳤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번역가들은 작가들과 여러 번 대화를 나눈다. 데 베네디티스는 “문체가 낯설어서 혼자 번역하기는 만만치 않은데 작가의 말을 들으니 새롭게 이해되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번역가로도 활동 중인 한 작가는 “단어의 뉘앙스를 살리면서 원문의 의미를 그대로 전달하는 게 쉽지 않다”며 번역의 어려움에 공감했다. 국적을 불문하고 번역은 차이를 뛰어넘어 보편에 닿는 지난한 작업이다. 작가가 프랑스 작가 모리스 블랑쇼를 인용하며 글쓰기의 자세를 언급한 대목은 묘하게 작품을 대하는 번역가들의 태도로도 읽힌다. “내가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이 나를 이해하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해서 다가가려는 시도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하잖아요. 시도 자체가 중요하니까. 뻔한 말 같지만 안 될 거라고 생각만 하는 것과 일단 해보는 건 다르죠.”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2013-08-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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