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황제’ 교황, 신 아닌 힘의 산물

‘마지막 황제’ 교황, 신 아닌 힘의 산물

입력 2013-08-31 00:00
수정 2013-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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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역사] 호르스트 푸어만 지음/차용구 옮김 도서출판 길/396쪽/2만 2000원

교황권은 언제 정립됐을까. 그리고 교황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등장했을까. 알려진 바에 따르면 12세기 이후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신과 인간 사이에 위치한 존재로 여겨졌으며 오늘날까지 매년 증보판으로 발행되는 ‘교황청 연감’에도 베네딕토 16세, 로마의 주교,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천명되고 있다. 신에는 못 미치지만 인간보다는 귀한 존재로 자리매김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이다. 바티칸 교황청에서 전 세계인의 관심을 모은 가운데 프란치스코 1세가 교황으로 선출됐다. 전임 베네딕토 16세가 역사상 단 한번의 전례밖에 없었던 자진 사임을 전격 발표함에 따라 선출된 새 교황이었다. 어쩌면 교황은 지구 상의 마지막 황제인지도 모른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2000여년을 존속한 유일한 지배자인 데다 지구 상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 교황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황권의 역사를 단 한 권의 책으로 잘 풀어낼 수 있을까. 이런 궁금증으로 들여다본 것이 신간 ‘교황의 역사’다. 부제는 ‘베드로부터 베네딕토 16세까지’다. 첫 장부터 흥미롭다. ‘이 세상에서 인간이 정략적으로 만든 작품 중에서 가톨릭만큼이나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에도 없다. 교황들의 계보는 과거의 위풍당당했던 세속 가문들과 비교될 수 있다….’

이 같은 질문과 함께 2000여년 동안 인류 역사와 함께 존속해 온 파란만장한 ‘교황좌’의 이면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600년 만에 교황의 자진 사임, 최초의 비유럽권 교황, 추기경들을 가둬 두고 새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는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등 교황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에 눈길이 간다. 이 책의 두드러진 특징은 ‘교황좌’를 주시하면서 콘클라베와 3분의2의 다수결 원칙, 그리고 추기경으로 이뤄진 선거인단이라는 선출 법령과 기원의 변천을 보여 주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교황의 역사에 중점을 두되 신의 의지의 역사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로마 교회와 그 주변부 세력 구도의 산물로서 교황들이 겪어 온 세월을 생생히 되짚어 보고 있다. 중세사 전문가인 저자의 문화사적 필체가 관심을 끈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2013-08-31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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