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 이야기 | 이질풀] 앙증맞고 소박한 이질풀

[야생초 이야기 | 이질풀] 앙증맞고 소박한 이질풀

입력 2010-12-05 00:00
업데이트 2010-12-0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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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을 뒤로 하고 잠시 일손을 놓고 일부러라도 교외로 나가보라. 그리하여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 존재를 늘 잊고 사는 들풀들과 만나보라.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꼭 있다. 그 첫째 이유는 우리가 온 곳이 그들의 세계이며 그래서 돌아갈 곳도 그곳임을 확인하고 또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그곳에서 새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때가 되면 정직하게 싹을 틔우고 보잘것없을지라도 꽃을 피우고 작을지라도 씨앗을 맺으며 때에 맞춰 왔던 자리로 겸손하게 돌아가는 들풀들의 세계. 그들에게 순리를 거스르는 일은 용납되지 않는다. 혼자 같지만 혼자가 아닌 전체로 연결되어 있어 혼자만 도드라졌다가는 살아갈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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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살아갈 곳이 아니다 싶으면 욕심 내지 않는다. 대신 제가 살아갈 적지다 싶으면 최선을 다하여 뿌리 내리고 꽃을 피운다. 시간을 거스르지 않는다. 마치 시계와 같아서 제 순서를 지켜 무대 위에 나왔다가 제 연기를 다 하곤 무대 뒤로 사라진다. 비록 하찮은 역할이라 할지라도 아무 불만 없이 누가 봐주지 않는 후미진 산골짝일지라도 제 나름의 최선의 빛깔과 모양으로 피었다가 진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욕망을 채우려 드는 우리 인간과는 다르다. 아무 곳에서나 아무 때나 싹트고 뿌리내리는 것 같아도 들풀들은 제 살 만한 조건이 아니면 기다리거나 스스로를 도태시킨다. 그들의 생존투쟁은 치열하지만 피 흘리지 않는다. 침묵의 언어로 늘 화해하고 조화를 도모한다.

재화에 눈이 멀어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과 멀어진다. 들풀이 제각기 제 안에 아름다운 꽃과 향기를 품고 있다가 피어나듯이 우리에게도 꽃과 향기가 다 갖추어져 있는데 그것을 피워내지 못하고 욕망의 더러운 악취만을 한평생 뿜어놓고 얼룩을 새겨놓고 간다. 작은 들꽃을 만나는 것은 그래서 소중하다. 우리의 본향과 우리가 귀의해야 할 정직한 세계를 대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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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여름도 가고 가을이 깊다. 이 계절 우리의 혼탁한 삶에 다시 맑은 시력을 회복하여 줄 들꽃을 찾아나서 보자. 오늘 소개할 것은 ‘이질풀’이다. 요즘에야 우리 생활위생 수준이 선진국 대열에 있고 좋은 약과 의학이 발달해 있어서 ‘이질’이란 병명이 생소하다. 그러나 그 옛날 이질은 흔한 여름병이었다. 이질은 열이 나고 구역질이 나거나 피가 섞인 설사를 하는 병이다. 이질풀은 이 이질에 특효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교외의 들길을 걸어보라. 이제 낮은 곳에 눈길을 주어보자. 산들거리는 바람에 춤을 추어대는 코스모스나 향기를 뿜어대는 구절초 그 하얀빛이 가을 들녘을 메우고 있을 무렵 그보다 더 낮은 풀섶 아래엔 이질풀이 피었다가 지고 있을 것이다. 코스모스가 필 무렵이면 이 이질풀은 거의 꽃은 지고 씨앗이, 그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묘한 아름다움을 지닌 씨앗이 맺혀 익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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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풀은 쥐손이풀과에 속하는 식물인데 그 이름이 재미있다. 그 잎의 모양이 쥐의 앞발을 닮았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크기야 쥐의 앞발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크지만 그 모양은 아닌 게 아니라 닮아 있다. 대개는 다섯 갈래로 골이 파여져 있고 잎의 상단은 굵은 톱니처럼 결각이 져 있다. 잎 앞뒤에 거무스름한 얼룩이 비친다. 약 50~60cm 정도 자라는데 가지가 많으며 비스듬히 옆으로 퍼지며 자란다.

가지 끝이 두 갈래로 나뉘면서 꽃이 맺혀 핀다. 나란히 맺히지만 한 송이가 먼저 핀다. 그 꽃이 지름 1cm나 될까? 엄지손톱 크기 만하다. 홍자색이라고 할까? 물론 흰 꽃도 없지 않다. 꽃잎 아래엔 끝이 뾰족한 꽃받침이 꽃을 받들고 있고 다섯 장의 꽃잎엔 더 붉은 선이 다섯 갈래로 그어져 있다. 꽃의 핏줄이 비쳐 보이는 것 같다.

이 붉은 선의 개수로 거의 비슷한 모양과 크기의 쥐손이풀꽃과 구분할 수가 있다. 쥐손이풀꽃은 이 선이 대부분 세 개다. 물론 줄기에 난 미세한 잔털이 쥐손이풀은 아래쪽을 향한다는 점에서도 구분이 가능하다. 잎의 모양이 이질풀은 둥근 편이고, 쥐손이풀은 뾰족한 편이며 잎의 갈라지는 형태가 이질풀은 얕게, 쥐손이풀은 깊게 갈라진다. 이질풀의 꽃은 줄기에서 작은 꽃줄기가 두 개 갈라져 각각 한 개씩 피고, 쥐손이풀은 꽃줄기 위에 한 개가 아래 줄기에는 두 개가 달린다. 이 이질풀꽃이 피기보다 한 달 정도 빠르게 고산지역에서 피는 둥근이질풀이 있는데 그 크기가 크다. 꽃잎에 실핏줄 같은 줄이 얽혀 있어 쉽게 구별할 수가 있다. 이 말고도 비슷비슷한 이질풀의 친척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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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이 아무리 자세히 ‘앙증맞다’라는 말을 설명해 놓았어도 이 꽃을 한번 보는 것만 같지 못하다.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런데 그 씨앗을 보면 더욱 신기하다. 씨앗이 맺히면 바늘처럼 뾰족하다. 그런데 익기 시작하면서 씨앗 아래쪽이 다섯 갈래로 벌어져 바깥으로 용수철처럼 말려 올라가는데, 그게 마치 천장에 매달아 놓은 샹들리에 같다. 혹은 왕관? 혹은 배의 닻 모양이다. 그 기하학적 구조가 신기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우리의 문화가 이루어 놓은 인공 구조물이나 예술작품에서도 그 아름다움과 감동을 느끼지만 자연에서 얻는 감동에 비하랴. 그것을 보고 느끼는 동안 우리는 잠시나마 삶의 각박함에서 벗어나, 피비린내 나는 경쟁의 논리가 얼마나 인간성을 황폐화하는지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자연의 조화로운 질서 속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잠시라도 짬을 내어 들풀들과 만나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이다.

그 소박하고 앙증맞은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려니와 이질풀은 민간요법으로도 유용하게 널리 쓰였다고 한다. 이질에 걸리면 이 풀을 삶아 그 물을 복용하는 것이다. 이 풀은 가축에게도 좋아 병아리나 닭이 설사하고 꽁지 쪽이 지저분하면 이 풀을 뽑아다가 잘게 썰어 모이랑 섞어주었다고 한다. 설사병에 걸린 동물들은 스스로가 알아서 이 풀을 뜯어먹었다고도 한다. 지금 우리에게 그런 지혜가 있기나 한가?

글_ 복효근 남원 금지중학교 교사·사진_ 조기수 남원생태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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