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가도 눈치봐야” 거리로 나선 학교비정규직

“병가도 눈치봐야” 거리로 나선 학교비정규직

입력 2012-11-09 00:00
업데이트 2012-11-0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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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종사원 서러움 토로…”사람답게 살고싶어”

9일 전국에 있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왔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중 대부분은 학교 식당에서 급식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파업이 예고되자 언론과 시민들은 “아이들 밥을 볼모로 이권을 얻으려 한다”며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이들도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이고 이날 아침에 다른 부모와 같이 자녀 손에 도시락을 쥐여줬을 것이다.

이들이 아이들을 굶겨가며 거리로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집회 현장에서 만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는 간단했다.

”사람답게 일하고 사람답게 살고 싶다.”

전북 전주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조리사로 일하는 고모(42·여)씨는 두 딸의 어머니다.

고씨는 6년째 이 일을 해오고 있다. 올해 9월부터 근속수당이 신설되면서 월급이 108만원으로 올랐지만 일을 시작한 첫해부터 최근까지 세금을 제하고 그가 손에 쥔 것은 80만원이 전부였다.

그는 “함께 일하는 언니가 조리복에 소변을 봤다. 땀에 젖은 조리복이 내려가지 않아 미처 벗지 못하고 옷에 소변을 본 것이다. 이게 뭔가 싶어 언니를 붙들고 서럽게 울었다”면서 “그 일이 있은 후 ‘파업에 참여하겠다’고 결심했다”며 파업 참여 이유를 설명했다.

여름철 조리실의 체감온도는 40∼50도를 넘나든다. 조리복에 위생마스크, 모자, 장갑, 앞치마까지 차려입고 배식을 마치고 나면 온몸이 다 젖는 것은 다반사다.

몸이 아파 쉬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고씨는 “병가를 하루 내려고 하면 행정실 눈치를 봐야한다”면서 “언제 잘릴지도 모르는 파리 목숨인데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어 항상 병가를 낼 때면 대타를 구하고 일당 4만5천500원을 자비로 부담한다”고 말했다.

그나마 고씨와 같이 맞벌이를 하는 집은 형편이 좀 나은 편이다.

전주시내 한 고등학교에서 조리사로 일하는 장모(43·여)씨는 한 부모 가정의 가장이다.

장씨의 출근 시간은 오전 4시30분. 퇴근시간까지 12시간 정도 일을 한다.

조식 배식을 마치면 바로 중식 준비에 들어간다. 중식 배식을 마치고 늦은 점심을 먹고 나면 오후 2시30분.

한 시간가량 휴식시간을 주지만 형식적인 휴식시간일 뿐 다음날 조식(朝食) 준비를 서둘러야만 퇴근시간인 오후 4시30분에 정시 퇴근을 할 수 있다.

장씨는 “조식반과 석식반으로 조를 나눠 일하고 있다. 석식반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면서 “하루 12시간 중 30분 쉬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일을 해서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140만원 남짓. 혼자서 세 자녀를 키우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돈이다.

대학교 1학년인 큰딸은 학교를 일 년도 다니지 못한 채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림을 돕고 있지만 네 식구가 생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부족한 생활비는 퇴근 후 인근 식당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방학 때 일당이 높은 농촌 시설하우스 아르바이트로 충당한다.

그는 “우리 집 애들은 학원 한 번 못 보내봤다. 큰딸이 동생들을 위한다고 학교도 못 가고 일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며 눈물을 흘렸다.

고씨는 이날 파업 집회에 나오면서 두 딸에게 도시락을 싸줬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비정규직이 무엇인지 왜 파업을 해야 하는지 설명해줬다.

이들은 “파업을 결정했을 때 학교에서 점심을 굶어야 하는 아이들이 눈에 밟히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면서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이런 차별과 서러움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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