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 위 60대 경비원… 시말서 한장이 해고 사유였다

굴뚝 위 60대 경비원… 시말서 한장이 해고 사유였다

입력 2013-01-02 00:00
수정 2013-01-02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30m 높이서 새해도 고공농성…23명 중 14명 근로계약 해지

10년째 아파트경비원으로 일해온 민모(61)씨는 자신이 근무하던 서울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굴뚝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계약해지에 반발해 지난달 31일 옥상에 올라간 그는 30m 높이의 굴뚝에서 고공농성을 하며 밤을 지샜다. 그는 1일 “가족이 모여 새해를 맞아야 하는데 미안하다. 할 말이 없다”고 울먹였다.
1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에서 경비원 민모(61)씨가 단지 내 굴뚝에 올라가 농성을 벌이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1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에서 경비원 민모(61)씨가 단지 내 굴뚝에 올라가 농성을 벌이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2003년 경비일을 시작한 민씨는 최근 한국주택관리㈜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 60세 정년은 이미 넘겼지만 관리회사는 근무평가가 우수한 경비원을 62세까지 촉탁직으로 재고용해 왔다. 민씨는 “회사에서 한 해 더 근무보장해 준댔는데 부당해고했다”면서 “알람을 잘못 맞춰놔서 자정에 도는 순찰을 딱 한 번 깜빡했는데 그때 쓴 시말서가 해고사유였다”고 말했다. 관리회사는 민씨를 포함해 60세 이상 경비원 23명 중 14명의 근로계약을 해지했다. 민주노총은 “해직자들은 모두 새벽 근무 중 살짝 졸았거나 경비초소 안 형광등 밝기를 낮추는 등 경미한 이유로 시말서를 썼던 경비원들”면서 “대한민국 부의 1번지 속 비정규직의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민씨는 “당장 새해 첫날부터 새 인력을 쓴다고 하니 급한 마음에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면서 “굴뚝에라도 올라가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관리회사는 노조와 교섭에 나섰지만, 채용 권한은 아파트 동 대표들에 있어 타결 여부는 미지수다.

주민 반응은 엇갈렸다. 한 주민은 “자주 자리를 비우고 조는 경비원들이 있어 물갈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고공 시위를 지켜본 일부 주민은 “영하의 날씨에 환갑 넘은 경비원이 저러는 게 안타깝고 서글프다”고 입을 모았다.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2013-01-02 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투표
'정치 여론조사' 얼마큼 신뢰하시나요
최근 탄핵정국 속 조기 대선도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치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지고 있다. 여야는 여론조사의 방법과 결과를 놓고 서로 아전인수격 해석을 하고 있는 가운데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론이 그 어느때보다 두드러지게 제기되고 있다. 여러분은 '정치 여론조사'에 대해 얼마큼 신뢰하시나요?
절대 안 믿는다.
신뢰도 10~30퍼센트
신뢰도 30~60퍼센트
신뢰도60~90퍼센트
절대 신뢰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