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시한부 선고는 또다른 암

[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시한부 선고는 또다른 암

입력 2013-09-30 00:00
수정 2013-09-30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암 환자에 대한 의사의 시한부 언급을 모두 의사의 자의적 결정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환자나 가족들이 애원하며 매달리니 마지못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가 정말 바람직하지 않다고 믿는 의사의 ‘시한부 선고’는 의사보다 환자나 가족들이 짊어져야 할 부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어쩌면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치료 행위를 염두에 두고 미리 ‘보험’을 들어두자는 의도에서 생존 기한을 짧게 잡아 말한다는 혐의가 없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의료진에게 책임을 떠넘겨 걸핏하면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대는 풍토에서는 환자의 죽음이 결코 의료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미리 환자와 가족들에게 주지시키는 효과도 있을 것입니다. 믿기 어렵지만 병원의 수익을 고려한 시한부 선고도 없지 않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암이 벌써 전이돼 치료가 별 의미가 없는 환자를 두고 의사가 “길어야 6개월”이라고 말한다면 누가 이를 덤덤하게 받아들이겠습니까. “무슨 방법이 없겠느냐”거나 “어떻게 좀 해달라”며 의사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데, 일부 노회한 의사들은 이런 식으로 보다 부담이 큰 진료를 보다 손쉽게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는 ‘모든 처분이 병원과 의료진에게 맡겨져’ 환자의 부담은 커지지만 거꾸로 병원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보장되는 구도가 만들어지지 않습니까. 저는 흔히 말하는 과잉진료와 관련, 뜻밖의 병을 찾아내는 등의 순기능을 믿는 편이지만 생명이 경각에 놓인 암환자에게 ‘시한부’를 말하는 것은 그것과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암 자체만으로도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에 빠져 있을 환자와 가족들에게 여명을 함부로 언급하는 것은 자제해야 합니다. 그런 예측이 액면대로 맞을 리 없고, 설령 맞다 해도 의료 능력 밖에 있는 인간의 생명은 의사들이 좌지우지할 수 없는 신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허튼 시한부 선고가 환자와 가족들에게는 값진 정보가 아니라 또 다른 암의 고통으로 다가온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되겠지요.

jeshim@seoul.co.kr



2013-09-30 24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투표
'정치 여론조사' 얼마큼 신뢰하시나요
최근 탄핵정국 속 조기 대선도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치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지고 있다. 여야는 여론조사의 방법과 결과를 놓고 서로 아전인수격 해석을 하고 있는 가운데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론이 그 어느때보다 두드러지게 제기되고 있다. 여러분은 '정치 여론조사'에 대해 얼마큼 신뢰하시나요?
절대 안 믿는다.
신뢰도 10~30퍼센트
신뢰도 30~60퍼센트
신뢰도60~90퍼센트
절대 신뢰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