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2심 유죄 이유는
작년 7월 발견 수석비서관 회의록김기춘 지시·조윤선 실행 드러나
박준우 前수석 증언 번복도 근거
“지원 배제 명단 반복해 검토”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 관리, 실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윤선(왼쪽)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23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같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기춘(오른쪽)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이날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1심(3년)보다 무거운 징역 4년을 선고받고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문건들 가운데 대수비(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와 실수비(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 회의록 및 회의자료들을 통해 김 전 실장이 좌파 지원 배제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고 이를 정무수석실이 실행한 뒤 박 전 대통령에게 결과가 보고되는 정황 등이 확인됐고, 이는 곧 1심 판결을 뒤집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1심에서 블랙리스트 관여 혐의는 모두 무죄를 받았던 조 전 수석의 재수감에 직격탄이 됐다.
항소심 법정에서 조 전 수석의 전임자인 박준우 전 정무수석이 “지원 배제 관련 업무를 인수인계했다”며 증언을 번복한 점도 유죄 판단의 근거가 됐다. 박 전 수석은 “원심에서는 인간적 도리 때문에 조 전 수석 앞에서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의 경우 1심에서 무죄를 받았던 문화체육관광부 1급 공무원 사직 요구와 관련한 직권남용 혐의가 유죄로 뒤집혔다. 1심은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1급 공무원을 의사에 반해 면직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을 들어 “1급 공무원은 국가공무원법상 신분 보장이 되지 않는다”고 봤지만, 항소심은 “1급을 면직할 때 객관적이고 합리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김 전 실장의 사직 요구는 주로 지원 배제 실행에 소극적이었다고 평가되는 유진룡 전 장관과 가까운 사이였다는 등의 이유로 자의적으로 이뤄져 위법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문화의 옳고 그름이란 있을 수 없고, 문화예술에 대한 편가르기나 차별은 용인돼선 안 된다”면서 “피고인들 각자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지만 중대성과 심각성을 고려해 각 행위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양형도 엄격히 적용했음을 우회적으로 강조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2018-01-24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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